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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동백꽃처럼...

    엄마는 동백꽃처럼

           

    우리 친정아버지 기일은 동백꽃이 싱그럽고

    유채꽃이 질서 없이 피어도 반가운 이른 봄 언저리입니다.

    아버지 기일에 맞춰 고향인 섬으로 귀향하는 날엔

    언제나 우리 자매는 뒷동네 부둣가에 내리곤 했지요.


    아담한 초등학교 교문을 자나다 보면 마을 깊숙이 호수처럼 들이찬 바다, ‘두몽안’이 있고,

    그 건너편엔 때 이른 유채꽃들이 바닷물에 아롱져 있었거든요.

    어릴 적 우리의 놀이터가 있는 ‘이야포’ 몽돌 밭과 구름다리를 지나

    우리 동네‘서고지’로 향하는 산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우리 엄마는

    고향집에서 절반의 산길을 걸어 아치를 이룬 동백나무 숲길에 마중 나와 계셨지요.

    여러 사정으로 시작된 객지 생활을 끝내고, 고향에서 안정된 시간을 보낼 즈음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와 싸우시던 아버지께서 황토마다에 내려앉은 꽃상여를 타고

    떠나신지 여러 해가 지나도 우리의 귀향길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도 가족 잃은 설움은 쉽게 가시질 않고 엄마는 나날이 야위고 슬퍼 보였습니다.

    그래도 우리 사남매는 오롯이 자식을 향한 엄마의 걱정과 사랑을 먹으며

    힘든 객지 생활도 이겨내고 마침내 모두 짝을 만나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노력만큼 차곡차곡 쌓일 거라 믿었던 행복은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요?

    베트남에서 그동안 쌓아둔 많은 것을 잃고 돌아왔을 때 패잔병 같은 우리에게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고생했니라. 살다 보면 오늘을 이야기하고 살날이 돌아올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오매 내 새끼들 몸 성히 돌아온 게 얼마나 다행이냐.”

    상심이 크셨을 텐데 외려 우리를 위로하고 다독이시던 엄마는,

    잠시 상경하여 지병인 당뇨관리를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애도 돌봐 주셨습니다.

     그동안 잃은 것도 많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또다시 좋은 날이 올 거란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도 직장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지요.


    어느새 아이가 혼자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을 즘,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신 엄마께 안부전화를 드리면 언제나

    “별일 없다. 괜찮다” 하셨지요.

    그 ‘괜찮다’는 말씀을 우리는 너무 믿었나 봅니다.

    여름휴가를 보내기위해 도착한 고향 부둣가에 위태롭게 서계신

    엄마 모습을 보고서야 덜컥 겁이 났으니까요.

    까맣게 변한 피부에 퉁퉁 부은 얼굴,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서계신 그 낯설고 무섭던 엄마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당신의 건강보다 외국 생활에서 돌아와 다시 살아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우리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될까봐

     홀로 그렇게 견디고 계셨던 겁니다.


    당뇨합병증에 말기 간경화였지요.

    이미 복수는 차오르고 손가락으로 종아리를 누르면 움푹 들어갈 만큼

    온몸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아도 날이 갈수록 엄마의 병환은 깊어져

    그 무서운 2개월 시한부 진단도 내려졌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아!”

    야간 병실에서 쪽잠을 자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엄마가 외할머니를 부르는 잠꼬대였습니다.

    그러다 뜬금없이 “아니, 청이 아부지는 뭔 욕심이 그리 많을 꺼나,

    우리 동네 고기는 다 잡을랑갑다. 온 바다에 퉁바리를 엄청 넣놨다야...”

    병실 천장을 초점 없는 눈동자로 가만히 응시하던 엄마의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말에 놀라기를 여러 번,

    결국 엄마는 간성혼수로 중환자실 신세가 되셨고,

    베트남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도 보름간의 휴가를 얻어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의식은 정상으로 돌아오셨지만 시한부 시간을 거스를 순 없었지요.

    “엄마, 얼른 나으세요. 다 나으면 베트남에 꼭 오셔야 해요.”

    “오냐, 암... 가야지... 나가 좋아지면 다시 가 볼라고 옷도 챙겨놨니라.

    가서도 몸 성해야 한다. 알겄제.” “엄마, 우리 엄마 어쩔까...”

    “내 막둥이 울긴 왜 운다냐. 엄마 금방 다 나을 건디... 엄마 이제 괜찮다.”


    직장 때문에 해외로 돌아가야 하는 막냇동생과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도

    너무도 의연하시던 엄마는 동생이 공항에서 곧 비행기를 탄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동안 참았던 울음보를 펑펑 터뜨리고 마셨습니다.


    그때는 모든 게 갑작스럽고 어이없이 이어져 현실은 꿈만 같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헤쳐갈 세상조차 녹록지 않아 슬퍼할 겨룰 조차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들른 고향집 문간방에서

    우리 사남매 몫으로 담아놓은 네 병의 간장을 발견하면서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지만요.


    어느새 엄마가 돌아가신지 1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우리들도 엄마가 생애에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하시던

    오십대도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형제자매는 엄마 잃은 현실이 낯설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슬픔을 품고 있지만,

    엄마의 바람대로 옛이야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명절을 맞아 야간열차를 타고 여객선을 타고

     긴긴 시간 고향 섬으로 내려오는 동안

    밤새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시며

    무사히 돌아오라 빌고 또 비시던 울 엄마...

    동백꽃처럼 너무도 갑자기 떠나신 울 엄마...

    이제는 엄마가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외할머니랑

    참 좋은 곳에서 행복하시겠지요.


    글/이종희

    사진/섬짱님

2009년 06월 07일 22시 50분에 가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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