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에세이 금오도


[금오도] 책을 읽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오아시스 조회 564회 작성일 24-02-10 18:52

본문

[금오도]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움보다는 솔직히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어쩜! 넋두리를  그렇게나 많이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30대의 미완성으로 엄마 자리 지키느라 사춘기를 요란하게 넘어가는 아들 기다리며,

세상살이가 내 마음 같은 줄 알고 객기부리다 상처 받은 일상을 재충전하는 곳도 금오홈이었습니다


금오홈에서 

수다 떨다 보면 감정이 순화되어 잔소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맛있는 것 해놓았다. 밥 먹어라'로 바뀌었지요

멋지게 장성한 아들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든든한 엄마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선한 영향력'에 공감을 했습니다

자식농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는데 금오홈에 가장 큰 수혜자가 오아시스입니다


거무섬(금오도 옛 호칭)에 근현대사의 중간쯤에 1969년생은 있는 듯합니다

국민학교는 운동회, 소풍가는 재미에 다녔습니다

온마을에 잔치가 벌어졌기 때문이지요


함께 놀던 세 살 터울의 옆집 언니가 1학년 입학 한다는 소리에 

큰 오빠등에 업혀 여섯 살부터 학교 가겠다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산모퉁이 하적집이라고 불렀던(점 보던 할머니가 살던 집) 곳까지는 완벽하게

일곱 살이라고 한 살 올려 거짓말 연습을 했지만

교무실에 들어선 순간 여섯 개의 손가락 끝은 얼음땡으로 변했지요

그 시절 국민학교 선생님들은 가족사를 훤히 깨뚤정도로 친근한 이웃사촌이었습니다


기억속에 선명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 여름밤 

천둥ㆍ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퍼 붓기 전에 막내를 등에 업고 담박질치느라

흥건히 땀에 젖은 줄도 모르고 바가지로 쏟아붇는 장대비를 피했지요

권투나 레슬링은 무서워했지만 동네 유일의 방앗간 집에 

티비 단체관람 후 둘째 오빠 등에 업혀 올 요량으로 꽁무니를 쫓아다녔습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전기 불이 거무섬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교복을 입고 다니는 언니 오빠들 모습은 제 눈에는 범접할 수 없는 청춘이 빛나 보였습니다

민주화가 섬에도 불어와서 중3 때 교복을 입지 말라는 어설픈 자율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 '정겨운 이야기'를 저의 시선으로 풀어보았습니다


2) 맛있는 이야기

육십 년을 단짝으로 살다오다 말없이 떠나버린 옆자리

슬픔을 삼키고 삼키느라 병마는 깊은 계곡을 만들고 차가운 눈물이 가득 고인다

아들이 없는 집을 어미는 왜 떠나야 하는지 

아들의 빈 자리를 모른 채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연락 한번 없다냐'

출가외인이라고 외손녀 돌잔치에 하룻밤 머물고 갔을 뿐인데

딸들과 동행을 시작하려니 허허함은 오죽했을까

'너희 아버지 밥 차려줘라' 해 질 녘 밥상 차리는 소리가

눈꺼풀이 내려앉는 늦은 밤에도 메아리가 된다

배불리 게 아이들 먹이고 입히느라 청춘을 고구마밭에 빼앗기고

가냘픈 숨소리만 헐떡거린다

까실해진 입맛을 돋아주려고 손녀의 손까지 빌려 정성을 들여도

산해진미가 무용지물 '안 묵으련다' 휘젓던 고개도

마실 나간 틀니 찾을 필요도 없이 호호 불며 연신 맛있다

군고구마 냄새 솔솔 엄마 미소 피어난다


* 엄마가 좋아하셨던 최애의 음식이 고구마와 뽈락이다

다른 비린 생선을 드시면 장이 약한 엄마는 탈이 났지만

똑같은 생선인데도 뽈락은 아무런 탈이 없었다 

.......,


엄마 딸이 뽈락구이를 좋아하는 것은 엄마를 닮아서,

외손녀가 군고구마를 좋아하는 것은 나를 닮아서라고

고향은 어느 곳에 살아가더라도 늘 내 곁에 머물고 있다 


3) 금오열도 이야기


"사람에게는 무릇 달려갈 어떤 곳이 필요한 것 같다

지치고 힘들 때

무언가 꽉 막힌 벽을 만났을 때

그리고 주기적으로"


"아무 때나 오너라.....

난 언제나 이 자리에 변함없이 있을 터이니...."


* 출처(대부산 등산길), 명제님 글


누구나 겪었을 가족 간에 이별을 내가 겪지 않고는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몰랐다

친정이 없어진다는 쓸쓸함에 아버지와 이별

총총히 아버지를 따라가는 둘째 오빠와 이별, 엄마와의 이별도

해풍에 실려오는 자연 바람이 두 눈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나의 슬픔을 닦아주었다.


야호,... 야호,.....

가슴을 활짝 열고 살리라

가슴에 희망을 가득 담고 살리라

가슴에 메아리를 들으며 살리라

(나 자신 스스로 겸손해지는....)

* 출처 (옥녀봉에서 검바위까지), 오아시스글


(금오도 ) 책 속에 한 글자,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정신 차리라고 휘몰아치는 고향 바람소리 

이 시원함은 마음이 치유되어가며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고향은 언제나 기다린다고,~~~ 


4) 추억 속에 멋진 회상들


모 하동에서 우학리까지 공등산을 넘어서 잰걸음으로 걸어도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단발머리 소녀들의 감수성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청춘이었다

산들바람이 유혹하는 길 따라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산벚나무꽃이 만개할 때 쯤 푸른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펼쳐진 수채화는 등굣길을 풋풋하게 했다


신작로가 중2 때 완공되어도 옛 길인 오솔길로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산딸기가 지천으로 있고 정금ㆍ찔레순 ㆍ 붓떡도 따먹고

쑥부쟁이, 들국화 향기에서 실려오는 가을바람은 소녀들의 코끝을 매혹시켰다

숨이 턱에 닿도록 깔닥고개를 올라온 순간

보들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은빛억새들의 춤사위가

이승과 저승길이 어우러져 너울대는 춤사위를 펼친다


*쏨뱅이님(전원일기), '해마다 여름만 되면 가보고 싶은 곳'

개구리 헤엄을 치며 함께 자맥질을 하고 있는 듯했다

금오도에 태어났지만 섬 중에 외딴 육지인 모하동은 바다 수영을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꼭, 한 번 가보리라'

* 미리님(소리도등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그대로 느꼈습니다


창영호를 타고 여수를 가려면 용머리를 통과해야만 갈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이다

멀미를 하는 나에게는 공포의 바다였다

친구들은 안 하는데 유독 나만 심한지 어른되어서 달팽이관 한쪽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받아들이고 있다

신양호도 여천마을에서 화태리를 빠져나가는 구간에 물살이 바뀌면서 파도가 거칠다

폭풍주의보가 내려도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는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귀향 길이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져버렸네요

영원할 것 같았지만 이별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5) 그립고ㆍ그리워라


* 안개님(육자배기), * 김정화님(바다와 아버지)에 글을 읽으며

친구들의 엄마이자 아버지기에 그분들의 노곤한 삶의 여정이 보여서

애틋함이 더 해집니다


나에 아버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비렁길이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여천마을, 함구미마을을 가보고 용머리를 가보았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아~~

그냥,울컥합니다

이 길을 새벽이슬 맞으며 아버지는 60년을 넘게 걸으셨구나

외진 풀숲을 헤집으며 길을 만들어가며 길도 아닌 길이었을텐데

한 여름에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신 이유를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발가락사이가 사계절 내내 짓물려 터져 있었던 이유도


삼대독자에 홀아버지만 덩그러니 제대로 된 밭한뙈기 없는 가난한 청년이면서도 젊은 패기하나로 외할아버지 눈에 들어 장가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술 한 잔 드시는 날에는 눈물을 훔치시며  서글픈 육자배기 곡조가 밤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자식들 배는 굶지 않게 한다는 다짐 하나로 세상을 살아 왔노라고

새벽 3시 쯤이면 부엌에서 장사 나가시는 아버지 아침상 차리는 소리를

우리 형제들은 이불 속에서 듣고 자랐습니다

농사를 안 짓는 농사꾼처럼 일을 하시고

무릎에서 연골이 닳고 인공관절이 우두득 소리가 쇠하기전까지


소장사를 이 마을에서 걸어서, 저 마을로 걷고 걸어서 다니셨습니다

어드미~대부산 몬당을 넘어~여천동, 사장골~연화동고개~유송리

대유~소유~옥녀봉몬당을 돌아서 ~찬몰래기 우뚝 솟은 망산을끼고 주렁주렁 굽히진 길마다 

어미들의 머리위에 빼깽이 가마니가 흰 서리가 되어 올려지고 

굽은 등에는 지게가 걸려있었지요. 

비렁길이 저에게 자꾸 말을 걸어옵니다. 그 때를 기억하느냐고?

1코스~,2코스~,3코스~,4코스,

아버지가 전해주셨던 머릿개, 진작지, 막개~~

부슬비 내리던 날 어둠을 휘젓고 고개를 넘어오다 도깨비를 만난 이야기

5코스~,

안도 동고지, 연도까지,사선(돈을 주고 급하게 빌린 배)을 빌려서 장사를 가던 곳

폭풍이 불면 그 섬에 갖혀서 아버지가 귀가하지 못하는 밤은

엄마의 육자배기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지나온 삶을 걸어보고

사진으로 구석구석 보게 되고 글로 접하면서 가슴한구석이 아리다 못해,

그리움만 가득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장사집 딸이라는 말이 창피하기만 했던 못난 딸, 아버지는 이런 나를 위해

당신의 뼈마디마다 자식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걷고 걸었는데,


아버지의 발자취를 놓칠세라

옥녀봉 고개를 넘어오는 산들바람에

고향 소식을 물어봐도 메아리만 되어 돌아옵니다


이제는 아버지 무덤 가에 

내 아버지여서 자랑스럽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려 가려고 합니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지금 나의 모든 감각기관에 저장된 마음은
지나온 과거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거지요.
거칠고 사나운 바람을 견디기엔
너무 여리고 약했지만,
다행스럽게 마데카솔 같은
참 귀한 내성이 우리 마음에 있어
견딜 수 없는 상처까지 치유하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고
너무 냉담한 마음에 수없이 절망하며
홀연히 떠나고 싶었던 마음도 있지요.

삶은 그런 게 아니라고 뒷걸음쳐도
다짐한 게 있어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내가 사랑할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사랑해야지...
내 이기심에 가두지 말아야지...

이런 숱한 다짐들이
시시때때로 무너지는 건
나는 결국 나를 더 많이 사랑했고
나는 결국 내 편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기로 했어요.

부모님, 형제, 친구들, 선 후배님,
그리고 동네 이웃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소중한 추억이
오아시스님 마음에 가득하네요.

이별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강해져도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 마음 잘 다독이며 힘내요.

힘든 시간에 풀어주신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우리 이 자리를 채우며
참 씩씩하게 살아냈네요.
늘 건강, 건필하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

COPYRIGHT Ⓒ 금오열도.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