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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금오열도 어디쯤에 네잎클로버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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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희 조회 1,614회 작성일 24-02-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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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열도 어디쯤에 네잎클로버가 있었을까

인터넷 서점에 주문해 둔 금오도 에세이가 도착했다. 

박스 테이프를 뜯자마자 영영 녹슬지 않을 것 같은 자주색 표지가 보인다. 깔끔하게 정돈된 서고지 방파제와 등대, 그리고 알마도가 보인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목차에 올라온 내 글을 먼저 찾아 읽는다.

예전에 누군가 그랬다. 반듯한 길이 아닌데 그 길 끝에 가닿으면 가슴이 흥건하게 젖는다고... 제멋대로 자란 풀꽃 같은 나의 30대가 이렇게 숨어 있었다니..... 나는 멍하니 하늘을 본다.

황혼의 깊이에 빠져있는 대부산 정상에 다다르자 [정겨운 이야기]가 나를 붙잡는다. 화면이 닳도록 읽었음에도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되어, 고향을 지척에 두고 돌아선 마음에 멈춘다. 급하게 끓어오른 거품이 물 풍선으로 터지다가 잠잠해진다. 우리 인생에 뜸 들이는 과정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는 까닭에 함부로 솥뚜껑을 열지 못한다. 우리의 바람대로 주말 명화극장이 끝나는 시간만큼 디젤발전기가 돌아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갈증의 시간에도 신양호 사무장님은 다정하게 손을 내미시고, 산길에 피어있는 말간 햇살은 보랏빛 몽환으로 번진다. 작은 땐마를 타고 표류한 파도 밭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것은, 설탕 넣은 동동주 한 잔에 뱅그르르 돌던 유년의 숲이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이해하실까.

고향홈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정이 세월을 먹는 사이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다. 그 옛날 고향 소식을 전해주던 막내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역포 초등학교 71년생 돼지띠의 안부가 궁금하고, 가정방문 오셨다가 깨진 생달걀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가신 선생님의 표정이 아른거린다.

문화의 갈증을 겨우 달래 주던 천막극장의 기억처럼 우리는 묵묵히 그 섬을 받아들였다. 보잘것없다고 여겨졌던 경험들이 소중한 가치로 거듭나기까지 참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떤 환경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맛있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감성돔, 보리, 삐비 고구마, 쥐치, 숭어회, 올게쌀, 산딸기, 뻘뚝 ,버찌, 뽈락, 된장찌개, 또바리감, 어름, 군고구마, 고등어, 노래미, 정금, 짜밤, 조구, 파래, 오강딸기, 젖꼭지, 박달, 바지게떡, 용치......끝없이 올라온 금오열도 음식은 내 미각의 기억으로 입맛을 일깨우고, 말죽거리 잔혹사로 시작한 공명 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풀리거나 흐트러짐 없이 쫀득하게 박제되어, 고개를 절로 끄덕이는 몰입의 속도를 이끈다. 어디 그뿐인가. 고향 한 귀퉁이에 저 홀로 익어가는 어름은 오승훈 님 가슴에 그리움으로 넝쿨져 오르고, 낱낱이 해부된 짱가님의 뽈락과 노래미는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산화되는 경지에 이른다.  그래서 노랑조구 한 마리와 고구마 찬가는 저 밑바닥 그리움까지 대책 없이 풀어놓고는 뚝, 멈춰버린다. 아! 이 절묘한 떨림을 어디서 찾고 어디로 이어갈 것인가. 그 서운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금오열도 이야기]를 바로 뒤에 연결해 둔 것일까.

물욕과 망상과 도덕의 절제를 가르쳐 준 금오열도에 한 번쯤 집중해 보라는 명경지수님의 말씀을 따라 용머리와 필봉산을 넘어 장지항에 머문다. 내가 알지 못한 고향은 신기한 빛의 굴절처럼 나를 끌어당겼다가 놓아준다. 하지만 걸음은 언제나 발 딛고 서있는 자리에 멈추지 못하고 서고지와 부도, 알마도를 지나 소리도를 향한다. "숲속의 잠자는 미녀"와 "무화과나무 소녀"의 동화를 읽어줄 대룡단은 입을 꼭 다문 채 요지부동인데, 소룡단 파도는 쏨팽이굴 전설을 쉼 없이 오가며 인적을 끌어당기느라 부산하다.

어느새 나는 오늘 우리를 있게 해 준 사랑의 길, 배움의 길, 인고의 길, 문명의 길에 멈춘다. 이 거대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던 고난의 진액은 쏨뱅이님의 투명한 서정으로 희석된다. 척박한 날들의 가슴 아린 기억들이 이렇게도 다정하게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니, 문장이 너무 섬세하고 예뻐서 차마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데, 짱가님은 팝콘 같은 유머를 터트리고 거무섬 놀이를 잔뜩 풀어놓는다. 

오징어 다까리, 찐놀이, 가이센도 좋지만, 나는 총쌈에 등장한 나시찬이 제일 좋았다. 진남 초등학교 3학년 때 흑백 TV 화면에 등장한 나시찬을 처음 본 후 자꾸 보고 싶어졌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에게도 상실감이 있었다. 그 상실이라는 것이 커다랗게 몸집을 키워 어드미에 도착한 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녀의 고향 집이 고향의 식수를 위해 유실되었다. 그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추억 속의 멋진 회상들] 은 그토록 영롱한 빛으로 우리네 정신에 스며든 것일까.

전원일기, 소리도 등대, 용머리는 나의 꿈, 낭장망과 오시깨, 강구, 낭끄터리, 청보리가 익어가는 오월, 바다와 아버지, 감나무...

가슴을 울렁이게 했던 사연들을 잠시 미루던 때가 있었다. 베트남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며 태풍 매미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난 후 쓴 글 "그 섬에 갇혀" 는 베트남에서 완성했다. 고향 홈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느린 인터넷 속도에 의한 인내심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였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교민잡지를 뒤적이는 일이나, 베트남어 과외 선생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베트남 문화를 배우는 일은 너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쓴 베트남 생활기를 고향 홈페이지에 자주 올리다 보니, 내가 베트남에 있는지 고향에 있는지 시공간 구분이 안되었다.

어제의 일처럼 또렷한 날들이 너무 많은 나이테를 그렸다. 그만큼의 시간을 더 채우면 우리는 [그립고 그리워라]라는 가슴 뭉클한 이름으로 보돌 바다에 스밀 수 있을까. 늘 새랍만 나서면 익숙하게 반기던 나로도 안쪽을 상상하며 꿈을 키우고, 삶의 여정을 고비마다 우려주신 어머니의 육자배기와 사시미 한 마리의 에피소드, 그리고 선창가에서 불러보는 밤배의 마르지 않는 감성이 끊임없이 섬사람들을 고향으로 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정신의 대미는 명제님의 "물 보러 가기"였다.  반전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오랜 과정이 잔잔하게 전개되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망망대해에 홀로 떨어져 계셔도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에 필요한 싱싱한 활어를 건져 오신다는 믿음이다.

깨알 같은 댓글 하나까지 추리고 추린 살가운 애정의 깊이는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가벼운 이야기에서부터 묵직한 삶의 지침서까지, 금오열도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섬. 섬. 섬 같은 사연과 풍경을 골고루 수면 위에 올려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과 낮을 촘촘하게 살펴야 했을까. 그 너른 세상을 향한 걸음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순박한 마음을 부려놓지 않았다면, 진솔한 이야기와 호흡하지 않았다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현재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건, 살아온 날들의 경험으로 쌓은 안목에서 나온다는데, 우리 고향의 빛과 그늘 또한 그와 같아서 소멸 속에 유추할 수 있는 경험이 전무한 후세들을 염두에 두셨다니, 나는  "금오도" 앞에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다.

내 안에 가득 찬 진공 같은 속박과 공허를 열고 공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도, 유일한 탈출구는 무언가를 긁적이며 생각을 꺼내는 것이었다. 가장 왕성했던 절망의 시간과 가장 쓸쓸했던 소란의 행간을 풀어내다 보면 진통제 같은 두근거림이 밖으로 나와 수시로 무력해지는 내 마음을 지우곤 했다.

조부모님 품에서 유년을 보내지 않았다면, 우리 부모님이 고향으로 복귀하지 않았다면, 내가 여남 중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남면을 검색하지 않았다면, 채팅방에서 안도리 게시판에 편지 한 통 써 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머물고 있는 자리를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찰나의 틈바구니가 일궈낸 행운은 종이 한 장의 차를 포용할 수 없다. 오랜 세월 한 장면 한 장면 마음 길을 생생하게 이어온 고향 네티즌의 온기만큼 확실한 필연이 어디 있을까. 더욱 큰 것은 이 빛나는 가치를 알지 못한 채 모두가 세속에 휩쓸려 희미해질 때도, 누군가는 텅 빈 고향 홈페이지에 군불을 지피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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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span class="guest">외기러기</span>님의 댓글

외기러기 작성일

이 글은 내가 본 애린님 글 중에서도 가히 백미라 할수 있겠습니다.
잘 쓰셨네요.
어릴적 주 먹거리였던 감성돔.보리.삐비,고구마.쥐치, 숭어회 등등 수많은 종류의 이름들을 일일이 니열 , 짧은 글속으로 소환하여
유연하게 소화시켜 예쁘게 만드는 문장력 특히 좋습니다.

아직 책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섬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함께한 새대들 이야기가
금오홈에서 공감대를 형성 꽃이 활짝 피워졌으리라 봅니다.
애린님 쓰신 글 속에서 책에 어떤 내용들이 실렸는지 십분 짐작이 되어지는군요.
홈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그냥 없어졌을지도 모를 작은 꽃봉오리 하나하나를 귀히 여겨 책으로 엮어 세상밖으로 내주신 홈지기님의
탁월한 안목과 선택 또한 높이 사고 싶습니다.

내가 홈에 뒤늦게 참여하여 자유게시판. 사진방 동영상방만 들렀다 가곤 했는데 이 방에도 많은분들이 좋은글들 올려주어 차차 읽어보겠습니다.
목차에 보면 애린님 저자로써 기여도가 어마어마 한것 같던데 책을 직접 서점에서 구입하셨다니 기여도가 별로임에도 무상으로 받은
내 입장으로서 심히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 가눌길 없습니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행복하십시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오늘 초등 친구들 모임 있어서
여의도 나왔다가 귀가 중입니다
아마 금오도 에세이 첫 주문한 사람은 저 일 거예요
나왔다는 소식 듣자마자 바로 구입했거든요ㅎ
짧게 리뷰도 썼는데요
그 후 책 보내주셔서 선물도 하고요 ㅎㅎ
전철 안에서 답글 쓰다가 내려야 해서 멈추고는
집 도착하여 커피 마시며 마저 쓰고 있어요.
금오도 에세이 책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아주 쉽게 읽히실 거고
아직 못 읽으신 분이라면
이글 읽으시고 찾아내시는
재미가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금오도 에세이 받으신 분은
독후감 써야 한다고
홈지기가 그랬어요 ㅎㅎ
서울에 또 비가 내립니다
외기러기님 도착한 고향홈
참 든든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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