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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나는 알수없는 질투심과 호기심과 상상력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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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foxy 조회 698회 작성일 23-02-1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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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 자랐다.

내 기억 속 고향은 가난한 도심 속 골목길,

골목길에서 구슬치기 하거나 고무줄 놀이하던 아이들,

저녁때가 되면 밥먹으라고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들,

그리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던 아빠들,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이 좀 더 형편이

나아지길 바라는 그 시대 부모님들의 소박한 소망들.

그런 사람들의 추억이 모여있던 곳이다.

 

고향에 대한 내 어릴 적 추억은 몇 개의 단편 조각만 남아있다.

아빠가 어릴적 사다 준 처음 맛 본 귤은 너무나 짜릿했고,

자다 일어나서 한밤중에 집 밖 화장실을 가다가

쥐약 먹은 우리집 개 루삐가 죽은 걸 발견했을 때

잠에 취해 슬픈 줄도 몰랐던 그 미안함이 여전히 남아있다.

좋아하는 호떡집 아저씨 집에 돌을 던지다

아저씨한테 엄청 혼났던 기억도 있고,

엄마한테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내가 아주 아주 어릴 때 옆집 언니의 신발이 너무 탐나서,

재래식 화장실에 몰래 버렸다는 얘기도 기억난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금오도란 책을 들었을 때,

나는 묘한 질투심과 호기심과 상상력에 휩싸였다.

진도에서 왔다는 한 살어린 대학 동기가 너무나 총명하고 똑똑한데다

자신의 고향에 대해 늘 자부심을 가지고 말할때마다,

완도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한 선배언니가

집 앞 저수지에서 하루 종일 수영하며 놀아서

지금도 여전한 체력과 아름다움을 자랑할때마다,

바다를 보고 자랐던 한 후배가 어릴적 고향을 떠나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도심에서 살다가, 고향의 바다가 너무도 그리울 때

도시 근교의 저수지라도 보고와야

가슴이 뚫렸다는 얘기를 들을때마다

섬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떤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걸까 궁금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섬 금오도를 고향으로 가진

사람들의 동화 속 판타지와 어린 시절 추억을 몰래 들여다보며

나는 그동안 내가 궁금해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했던

섬 사람들의 아련한 향수심과 울렁이는 파도이야기를

해리포터의 기억의 마법처럼 깊숙이도 들여다 보았다.

 

내가 쥐를 잡아온 우리집 고양이의 까만 눈동자를 사랑했을 때,

섬오빠들은 겁많은 눈동자를 가진 뽈락에 빠지고,

어쩌면 뽈락보다 더 미련한 노래미를 사랑했었다.

내가 짝사랑하던 큰길가 호떡집 아저씨를 좋아했을 때,

섬언니들은 볼을 꼬집고 신양호 갑판에서 잔소리를 해주시던

무서운 얼굴의 신양호 사무장님을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연탄불이 다 타고, 위가 절반쯤 남았을 때,

구멍을 맞추어 아래 연탄재를 빼고, 새까만 새 연탄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을 때, 섬의 어린이들은 지게를 지고

이 비랑 저 비랑을 타고 나무끌탱을 해와서,

그 뜨끈한 아궁이의 잔열로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하루는 우리집 연탄 가스가 방으로 새서,

아빠가 우리 모두를 흔들어 깨워서 집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길에서 기절했을 때,

섬의 아이들은 뻘뚝, 버찌, 뽕열매, 어름으로

끼니 대신 배를 채우며 가난한 시절을 났었다.

 

어릴 적 사촌오빠랑 동생들이랑 시내 영화관에 가서

상영하던 영화 중에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다,

극장안을 들어가면 너무나 어둡고 보이지 않아서,

손으로 더듬 더듬 좌석을 찾아가서 앉았던 시절.

섬에서는 귀하디 귀한 영사기를 빌려와

하늘이 뻥 뚫린 천막 영화관에서 요란한 불빛과

여름밤의 별똥별을 배경으로 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가족들이 함께 가슴 두근거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도시나 외딴섬이나 모두 행복한 추억들이었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며 별로 감성이 메말랐다거나

아름다운 고향에 대한 추억이나 어린 시절 기억이 없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섬사람들을 만나며, 섬사람들의 추억을 헤집으며,

섬사람들 가슴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섬의 이야기,

어린 시절 섬의 멜로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섬의 사랑이야기,

섬과 바다와 하늘과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다 큰 어른이 되어 다시 꺼내보고픈 아름다운 솜사탕 같은 이야기를

마주하며, 나는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질투심과 호기심과 상상력에

사로잡힌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글을 읽다가
국민학교 삼 학년 때 곡성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된 온 식구가
김치 국물을 마시고 읍내를
좀비처럼 걷던 기억이 스칩니다

묘한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글이
또 하나의 길을 만들고 있네요
무엇보다 금오도 에세이의 마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시고
자연스럽게 연결하신 님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증폭시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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