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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행복하시라 <금오도>의 저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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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셋째딸 조회 1,224회 작성일 23-06-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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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남의 경험을 통해 잊고 지낸  나의 기억 속의 일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을 <금오도>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의 선의로 시작된 금오도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서 사람들의 평범할 수도 있는 얘기가 책이 될 수 있구나! 느껴본다. 내 고향도 사방이 바다인 전복의 고장이라 책 속의 얘기들이 파도처럼 가슴에 밀려온다.

큰 언니가 먼저 읽고 형제들에게 주겠다고 사 온 <금오도>를 재미 삼아 읽다 보니 사는 모습이 특별할 것 없이 거기에서 거긴 인가 싶다. 남도의 구수한 사투리도 정겹게 다가오고 어릴 때 놀았던 놀이들도 비슷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정지에서 된장국을 구수하게 끓여내시던 엄마는 소금간을 살짝 한 고등어를 모태에 얹히곤 장작불이 꺼져가는 부삭 밑으로 조심스럽게 넣으셨죠. 고등어 껍질이 소금에 톡톡 부풀어 오르고, 온 세상의 미각을 돋구어 내듯 고등어 굽는 내음은 마당을 지나 돌담을 빠져나가고 있었죠> 내 어릴 적 우리집 정지에서 일어난 듯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모습이다. 어릴적 입맛은 평생을 간다. 지금도 고등어는 향과 풍미로 나를 사로잡는다. 어느 시간이나 장소는 혀끝, 코끝의 기억으로 떠올리는 법이다. 뜨거운 군고구마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호호 불며 옆집 순희랑 나눠 먹던 그 추억을 금오도의 누군가도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니...뻘뚝이랑 정금, 삐비는 어릴 적 우리의 훌륭한 간식이었다. 금오도의 염생이는 우리고향에서는 맴생이로 불렀었다. 성경책을 보듯 안경을 끼고 읽다 보니 내가 작가인 양 온통 내 어린 시절의 얘기 같다. 아직도 시력이 좋고 뼈가 튼튼한 것은 섬에서 태어나 살면서 유난히 물고기와 해초를 많이 먹은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때라 나락을 물에 담겨놓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고 감나무에서 떨어진 떫은 감을 물에 담가 놓고 먹었던 시절이었다. 남의 밭에 수박 서리, 참외서리하면서도 들키면 조금  혼나고 그럭저럭 받아주던 인심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고구마 빼깽이를 포댓자루에 담아 팔기 위해 온 식구가 달려들어 손을 보탰고 멸치어장에 멸치풍년이 들 때면 고사리손마저 달려들어 거들어야 했다. 추운 겨울에 빨랫방망이로 얼음을 깨며 빨래했었고 손들이 다 터서 안티푸라민을 발라 줄 정도면 잘사는 집이었다.

보리밥을 소쿠리에 담아 달랑달랑 걸어두면 사람보다 파리떼가 먼저 달려들어 맛을 보아도 손으로 파리를 날리며 먹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면 가당치도 않은 위생이지만 말이다. 보리밥을 물에 말아 열무김치에 먹으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고 고추와 된장, 상추, 열뭇잎까지 준비되면 임금님 상도 부럽지 않은 진수성찬이었다. 문저리와 간재미를 잡아 오는 날이면 도마 끝에 모여 썰기가 바쁘게  된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초고추장보다 된장과 간재미가 더 잘 어울린다) 멸치어장에 문어나 낙지라도 걸려든 날은 잔칫날이었다. 초고추장을 준비해서 썰어지기 전부터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멸치잡이 그물에 자잘하게 걸려들어 온 해산물을 넣고 끓인 해물 국수는 말하면 뭐 해, 라고 할 정도로 간이 딱 맞은 육수였다. 그때는 라면보다 가성비가 더 좋은 국수를 선호했던 시절이었다. 식구는 많고 먹을게 풍족하지 않을 때라 밀가루를 밀어 팥칼국수로 한 끼를 넘겼고 나중에 부모님이 양돈업을 시작한 덕에 단백질 보충은 걱정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에 농가 소득증대를 위해 정부에서 양돈업을 지원했었고 우리 집 앞 저수지에 잉어를 키워 가계의 소득증대를 꾀했었다. 여섯 명의 자식들은 멸치어장을 할 때도 잉어를 키울 때도 한마음으로 손을 보탰고 둘째 남동생은 집 앞 저수지에서 장어를 잡아서 누나 학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 누나는 나중에 동생이 외국으로 공부하러 갈 때 도움을 주었다. 그야말로 형제 책임주의였다한 해에 두 번씩 모이는 육 남매 모임 때는 그 시절을 안주 삼아 얘기꽃을 피우는 걸 보면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추억만은 부자였던 시절이었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보라는 큰 언니의 말을 듣고 망설이다 내 얘기를 적다 보니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이 생겨난다. 이 또한 <금오도>를 읽으면서 생긴 자신감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행복했고 내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감상문을 쓰는 것도 행복하니 <금오도> 속의 저자들에게 그대들 덕분에 행복했노라며 말하고 싶다. 비렁길을 걸으며 내 인생 2막 계획을 세우기 위한 걷기 여행을 해보고 싶어진다. 금오도의 파도를 보며 쉼을 얻는  휴식을 누려보고 싶다. 금오도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저자들과 금오도의 사계절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장식하는 누군가의 정성으로 이런 책이 나오는 기적이 이뤄지다니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그 시절에 추억들은 기억 속에 있을 뿐인데 이렇게 글로 살아나다니. 30여 전부터 글을 올린 여러 저자들이여 건강하고 행복 하시라... 그대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꼈으니...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안개</span>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님의 감상문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전복칼국수맛 입니다.
큰언니 눈에 찜 당해 자매님들께서 돌아가며 읽으시고 전복집 세째따님께서 여기까지 찾아 오셔서 글을 남겨 주셔서 너무나 반갑고 감사합니다.
재능이 탁월하십니다.
자유 게시판에서도 전복집 세째따님 글을 뵙고 싶네요.
기대 해도 되겠지요?
참고로 저는 칠남매중 세째딸 입니다.

<span class="guest">마실나온 전복집 셋째딸</span>님의 댓글의 댓글

마실나온 전복집 셋째딸 작성일

팔순을 넘기신 저의 친정어머니도 <금오도>를 읽고 계십니다.
하늘이 주신 밝은 눈 덕분에 또박또박 읽으시며 앗따 사투리 겁나 재밌다야 하시면서
전화기너머로 글속의 내용과 추억을 연결하십니다.
<내가 글만 잘 쓰면 감상문 쓰것다만 >하시면서 휴가오면 내말좀 받아서 쓰라고 하십니다.
한권의 책이 우리 가족을 어린시절로 회귀하게 만들어 주네요.
티비안테나가 바람에 돌아가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장면에서는 한없이 웃으십니다.
사는 거 별거없다야..똑같구만을 여러번 반복하십니다.
도시의 삶에 지칠때면 전복이 지천인 내고향 바다로 달려가 위안을 얻습니다.
내부모의 삶과 내 어린시절의 발자욱이 남겨진 고향..추억을 떠올려보는것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어판장 경매장을 보면서 활어보다 더 팔딱거리는 경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에너지를 느낍니다. 어린 시절을 섬에서 자란 나는 추억부자인듯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육남매의 얘기를 풀어놓으면 <금오도2>같은 책이 될듯합니다.

<span class="guest">안개</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저희 친정어머니도 88세 이십니다.
2년전 큰사고로 천국 가실뻔 하셨는데
건강이 회복되셔서 장구와 육자배기 뽑는 재미로 복지관 다니신다며
나름 펜 관리 하시고 계시더라구요.
여름휴가때 친정 나들이 하셔서 어머님의 '금오도 에세이집 ' 감상문 받아 쓰기 하셔서 올려 주세요.
금오도 최고령 작가님 되시겠어요.
정말 기대 됩니다.
상금도 있으시니 도전 하시길 바랍니다.
전복집육남매 삶도 매우 궁굼합니다.
벌써부터 '금오도 에세이' 2가 기대 됩니다.

애린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정말 컴퓨터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시간에 풀어내던 사연이
활자로 오프라인을 장식한다고 했을 때 저는 너무 부끄러워서
숨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제 아는 분들께는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언급하신 말씀이 금오도 에세이가
누구나 작가의 꿈을 갖게 하는 용기를 준다니
제가 너무 소중한 걸 놓친 것 같습니다.
그 오랜 시간 써 온 습작 기회는
바로 금오도 홈페이지였는데 말입니다.ㅎ ㅎ

금오도 홈페이지의 내면에는
쌓인 사연만큼이나 상향 조정해 준 생각이 있었고
더 너른 세상으로 이끌어준 뱃길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글과 더불어 풀어주신 추억들 너무 잘 감상했습니다.

특별하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경험했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어떤 빛나는 가치보다
작금의 그늘을 잠시라도 치유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생동감 넘친 글 감사합니다
님의 소중한 추억들
자유게시판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span class="guest">마실나온 전복집 셋째딸</span>님의 댓글

마실나온 전복집 셋째딸 작성일

거친 바닷바람을 헤치고 살아온 섬사람 특유의 강인함, 유연함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
책을 읽으며 그냥 미소짓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네요. 무엇보다도 직접 경험한 글의 힘이란
말할 수 없이 크다는것을 느낍니다.<금오도>의 저자들의 기록이 그래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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