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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이렇게 살아도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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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경지수 조회 3회 작성일 02-04-13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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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말을 했다고 좌경이 아니냐? 라고 질문을 하던 이인제
후보의 말이 생각 납니다.. 그말에 장의 논리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라고 대답하던
노무현후보의 답변도 생각납니다. 물론 보수적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발언은 자칫하면 사회주의자나 빨갱이로 몰릴 수 있는 위험한 입장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웬지 조금 씁쓸해졌습니다.

대학 다닐 때 이야기입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쌍팔년도 스토리라 별로 재미는 없는
이야기 입니다. 아마 웬 고리짝 이야기를 들추느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요..
매년 11월쯤이 되면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잘 찾아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이 기간이 지나면 주요 일간지에서 올해 총학생회장 동향 분석 기사가
실리곤 했지요..뭐 NL이라 불리는 전대협주류(지금은 한총련이라고 합니다)가 몇%
비주류 계열인 PD계열이 몇% 따라서 올해 학생운동의 흐름은 통일운동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등등 뭐 이런 기사였지요..
총학생회 선거 이야기나 골치아픈 노선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선거라는 게
늘 그렇듯 돈이 좀 들게 마련입니다. 광고물 인쇄비며 선거운동원들 식대(주로 학교
식권이지만) 등등..꽤 많이 듭니다. 저희들때는 한 천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돈이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주로 학생들이 푼푼이 돈을 거둬서
마련합니다. 절대 일부 정치권처럼 뒷돈을 받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항상 돈이 모자라면 봄이 오기 전에 그 돈을 갚기 위해 선배들은 여러가지
돈벌이를 하러 나가지요. 주로 일명 노가다라 부르는 공사장 막노동부터 중국집 배달원..
그리고 학번이 좀 낮은 애들은 겨울 방학때 소위 “공활”이라고 부르는 것을 했지요.
별다른 것이 아니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공장에 취직해서 두 달 정도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빚을 갚기 위한 목적도 일부분 있고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경험해보라는
의미도 있는 일이었지요.
학생회장 선거가 끝나고 저는 대구에 있는 한 공장에서 시간외 수당 빼고 한달에 32만원을
받고 일을 했었습니다. 일은 꽤나 힘들었습니다. 일하는 환경도 환경이거니와 툭하면 잔업
이다 특근이다 해서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지요.
제가 다니던 공장에는 열 일고 여덟 먹은 여공들도 많았습니다.
다들 시골에서 올라와 나보다 더 적은 월급으로 먹고 살면서 고향에 송금하고 저축하고
야학도 나갈려고 노력하고 그런 애들이었습니다.
안됐기도 하고 해서 야근 마치고 가끔 집에 가는 길에 경북대학교 뒷편 평화시장에 데려가 우
동이며 김밥..그리고 그 애들이 엄청 좋아하던 간장에 졸인 닭발을 사주곤 했지요.
비싼 것도 아니었고 기껏해봐야 오륙천원 되는 돈이었습니다. 며칠을 그랬더니
그 조막만한 여자애들이 나중에는 제 걱정을 하더군요.. 정말 고맙기는 한데 그렇게
낭비를 해서 언제 돈을 모으겠느냐고 그러지 말라구요..
대학 다니면서 선배들에게 몇 만원어치 술이며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선배들은 원래 사주는 사람들이라고... ^^;;
순간 꼴에 대학생이라고 이 애들에게 민주주의가 어떻고 노동운동이 어쩌고 하며
뭘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던 저는 그 생각을 버렸습니다
오히려 내가 배워야겠구나 이 애들에게서…무엇보다 살아가는 자세를…

그 다음 해 겨울, 다시 그 공장을 찾았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군에서 쓰는 판쵸우의를 납품하는 업체여서 벌이도
빵빵하던 그 회사가 일부러 회사를 폐업시켜 버린 것이죠.
열 일곱 여덟먹은 어린애들이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달라고 그 추운 겨울날 난방도
안되는 공장 바닥에 앉아 농성을 하는 머리위로 기업주의 사주를 받은 경찰이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려대고 있었습니다. 눈이 뒤집어졌습니다.
몇몇 선배와 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새고 나와보니 농성은 해산이 되어 있었고 아침
지방 뉴스에 짤막하게 보도가 되더군요. 해고된 노동자들이 공장 기물을 부수고 불법
농성을 하다가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고..
그날 선배의 자취방에서 낯술을 엄청 퍼 마시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노동자 농민 민중은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돈벌어주는 기계였고 노예 였습니다. 하루 열 여덟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불결하기
짝이 없는 근로조건에서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돈으로 쥐어짜이면서도 숨소리한번
크게 내지르지 못했었습니다. 부당한 취급을 당해도 아무말 못했으며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동료들이 산업재해로 쓰러져 나가도 아무도 이야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동부와 경찰과 회사사주는 한통속이 었고 파업을 하고 몸에 불을 붙이고 저항하지
않으면 아무도 보아주지 않았습니다..
노동자 농민..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이 잘못된 세상입니까? 철없는 아이들의 과격한 구호
였을까요?

나이가 들어 이제 저는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넥타이를 메고 사시사철 쾌적한 사무실에서
안락한 의자에 않아 펜대를 굴리며 월급을 타먹습니다. 맞습니다.. 변절을 했지요..
친구들 만나면 연봉 이야기며, 아파트 평수…굴리는 자동차와 치솟는 휘발유 값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서로 금박 물린 명함을 돌리고.. 횟집이나 고깃집에서 고단백질을 식도로 쑤셔
넣습니다..그러다 문득 티브이에 나오는 발전 노조의 파업 소식이나 거리로 밀려난 실직자들의
뉴스를 보면 갑자기 그 어린 여공들이 생각납니다. 부끄러워 집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정말 이렇게 살아도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상식이 지켜지고 노동자 농민들이..민중들이 주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 길에 노후보께서 흔들림 없이 서 있어 주길 바랍니다.

* 이글은 노무현의 홈페이지 베스트뷰에
올려진 직장인님의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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