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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의 전설 '용머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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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경지수 조회 3회 작성일 03-10-07 15:19

본문

2003년 9월 9일
한가위를 맞아 고향'금오도'를 찾았다.
밤사이 태풍이 쓸고간 섬마을의 아침은 말 그대로
페허을 연상케 하는 잔해들로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문명화 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오만해진 우리에게
자연의 섭리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난해한 섭리를 속에 나는 지금,
'보돌바다'위로 대부산 자락의 단애가 이루워 놓은
'신선대'의 울창한 어느 산길을 걷고 있다.
밤사이 휘몰아친 폭풍으로 인해
수종을 가리지 않고 아름들이 나무들이
가지가 찢어지고 뿌리가 통째로 뽑혀 가는길을 막았고
돌보는 이 없는 전답의 황량함속에 이끼 낀 돌언덕들이 황토와함께 무너져 있다.
옛길은 이제 나무와 돌과 이름도 알수 없는
초목으로 우거져 인적이 끝긴지 오래되었고
발밑, 바닷가 동굴속에서 파도에 부딪쳐 되 돌아오는
공명이 지나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신선대'를 넘어 '함구미 중턱'으로 돌아가는 숲길은
글을 넘어 상상에 맡길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길이다.
폭 3M 길이 300M 정도의 이 산길은
옛길 그대로에 오랜 휴식으로 인해 소사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어 만들어진 숲의 동굴 이다.
이 환상의 숲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산길로 올라가면
대부산 '마당지' 이고 바닷길로 가면 낯익은 '야외음악당'이다.
계곡 맞은 편엔, 금오의 전설을 간직한체
'용머리'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용의눈'을 부라린다.

'용머리' 목덜미에 감기어진 해송 군락의 그늘에 앉아
남해로 흐르는 보돌바다의 무한 정막을 바라보며
길가 밭자락에서 방금 따온 물외( 금오 오이)를
한입에 "비 무거 봉께" 타던 목마름이 사라지면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바닷길에 서만 바라보았던 '용머리'란 지명은 물길이 거칠기 유명하고
별로 살갑지 않은 구전된 옛이야기들 뿐이다.
'용의눈'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절묘한 바위 위치와 그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앞에 서 있으면 공허한 감회와 함께
시공을 초월한듯 한 환상속으로 빠져드는데
아마 이곳 지명이 '절터'란 것을 알고나면
그마음 또한 헤아려 흩트려 질 뿐이다.

칠백년전,고려시대에,
'보조국사인 '지눌'선사가
'꾸지박달나무' 주장자를 짚고 조계산 '송광사'를 출발하여 돌산 '향일암'에서 배를 띠워
바다와 산의 극치가 어울려진 이곳 '용두암'에서
수행을 하는 모습을 상상을 해 보면~
칠백년전의 덜마른 동양화 한폭을 감상하는 풍경이다.
하필이면 옹상스런 '꾸지 박달나무'냐고? 묻는다면
실제 단애 주변에는
'꾸지 박달나무'가 "이빠이 있써 붕께'허는 말이다.

이곳,절터에서바라본
남서쪽 해안은 참으로 아름다움에 경탄스러울 뿐이다.
"용머리'에서 바라본 '금오도' 남서쪽 해안선은 세계 어디에다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라고
'월간산' 잡지에 게제한 기자의 기행문이 실로 엄살 만은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가까이 부터 선선히 멀어지며 아스란이 바라다 보이는 -------
신선대의 나바론직벽,굴등의 단애 ,직포매봉,심포일종고지,신비의 알마도,소리도의 '필봉산'으로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과 다도해가 보돌바다 위를
그림같이 수놓고 있다.

'용의눈' 아래,
버러진 옛 밭터에는 다년생 풀이 자라
그림에서나 볼수 있는 목가 풍경을 연상시키고
'용머리'단애에 서니 마음의 단절과 함께 나로도가 손에 잡힐 닦아선다.
이곳 이름를 '고요의 바다'와 '폭풍의 언덕'이라 할꺼나?
용머리에 걸린 하늘빛 한번 죽여주는구만----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 이란
시공간에 사선하나 없는 이런 풍경을 무어라 말할수 있겠는가?
'고요의 바다'(용의눈 아래 절터)에서 '폭풍의언덕'(용두 단애)을 따라
'용두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상상의 잣대를
초월하고 남음이 있었다.

나는 '귀거레혜사'를 꿈꾸며
한마리 연어처럼 오늘도 '보돌바다'의 심해를 떠돌고 있다.
'문방사우'를 지니고 언제 그곳에서 안식할수 있을련지-------


---고향을 찾을 때나 ---고향을 떠날 때나
---그 의미는 다를 지라도 마음의 빚을 갚지 못했습니다.
---김영철님,이천일님,파출소장님,ㅇㅇ위원장님,장태준님,
---윤박사님,//////
---모든것이 단절되었던 그날저녘,
---촛불아래서 '안산'을 바라보며 맞주앉아
---담소을 나누었던 정겨운 시간들이
---그리워 집니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소공</span>님의 댓글

소공 작성일

언제 보아도 명경지수님의 글은 늘 해묵은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또 우리네의 사투리 속에서 또 한번 진한 고향의 맛을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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