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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나간 아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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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앤석맘 조회 285회 작성일 23-01-21 08:25

본문


넋 나간 아낙네 


비는 밤새 내려도 아직도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는지 오늘도 온종일 서성이고 있습니다. 


비에 젖은 모든 것들은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자동으로 떠오른 에피소드 때문에 느닷없이 웃음보가 터지곤 합니다.


그것의 제목을 붙이자면

‘넋 나간 아낙네’입니다. 


지난겨울 비 오는 어느 날 아침이야기입니다. 그날은 어떤 이유인지 하루를 집에서 보내게 되는 금쪽같은 날이었죠. 


평소 같으면 우리 집에서 가장 늦게 집을 나서는 식구는 아들래미지만 그날은 제가 정말 오랜만에 아들래미를 배웅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아, 우산 가져가야겠다.”


베란다 화초에 물을 주다가 때마침 뿌려지는 빗줄기를 보고 현관을 나서려는 아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 말에 아들은 한참 우산을 만지작거립니다.


“어? 이게 뜯어졌네?” 


우산살 하나가 삐죽 나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우산살은 끼우는 거라 제 손을 거쳐 다시 온전한 우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래미는 현관을 나섰습니다. 


그런데요. 그냥 그걸로 끝냈어야 했는데, 다시 베란다에 서서 아들이 우산을 잘 쓰고 가는지 쓸데없는 걱정이 문제였지요.


베란다에서서 한 마리 사슴이 되어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온 아들이 우산을 폅니다. 


그런데 이게 또 뭡니까. 아까 그 우산살이 빠진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다른 우산을 들고 제가 현관문을 연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아들래미가 멀어지기 전에 바꿔 줘야겠다' 는 굳센 의지 하나로요.


아뿔사~ 문제는 현관문에서 몇 발자국 나가지 않아서 등 뒤에서 벌어집니다. 


뚜.뚜.뚜.....쓰륵! 


그래요. 현관문이 잠기고 만 것이었습니다. 뭐, 그런 것이 문제가 되겠느냐고 하시겠지만, 그때까지 우리 집 번호키 비번을 외우지 못한 저에게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지요. 


그럼 그동안 어떻게 문을 열고 다녔냐고 까지는 묻지 않겠지요? 제 휴대폰에 자동키가 매달려 있었으니까요.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아들을 만나지 못하면 이웃 언니네 집에 가서 이 아침부터 전화를 써야겠다고 해야 하나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 몸을 보니 한 겨울에 나시 원피스...빈약하기 짝이 없는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머리는 완전 부시맨입니다. 에구,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러고 나왔을까요.... 아들에게 전해 줄 우산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윽고 아들은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벌써 한 친구를 만나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데요. 그러나 아들을 만나려면 제 걸음으론 따라잡을 수 없어 있는 힘껏 달음박질을 쳐야 했습니다.


한 명... 두 명... 그렇게 아이들을 따라잡고 드디어 팔만 뻗으면 아들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지석아, 헉헉...” 


아들은 그때서야 뒤를 돌아보며 움찔 놀랍니다. 꼭 놀란 토끼처럼 동그랗게 눈을 뜨고요.


“어? 엄마 왜?”

“비밀.. 번호... 좀.. 가르쳐 줘”

“무슨 비밀 번호?” 

“우리 집.. 헉.헉.. 

우리집 비.밀. 번. 호...헉..” 


그리고 무작정 아들이 매고 있는 가방에서 연필과 알림장을 꺼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비번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거든요.


“엄마, 진짜 우리 집 비밀번호 몰라?” 

“엉, 몰라. 헉. 헉” 

“아이구~ 창피해~” 

“그러니까 조용히 말해, 엄마도 창피해 죽겠으니까” 


아들이 불러준 비밀번호 여덟 자를 알림장 뒷장을 뜯어 받아 적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가 볼세라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제 손에는 들고나간 우산과 뜯어온 아들의 알림장을 들고요...... 2009.7.13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지앤석맘</span>님의 댓글

지앤석맘 작성일

엊그제 친구 빙모상에서 친구들 만나
휴대폰 집에 두고 낭패본
어떤 분 이야기하다가
제 친구가 저도 잊고 있던
제 사연을 말해줘서 찾아보니
정말 있었네요
참 신기한 금오홈입니다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ㅎ어쩌쓰까요^^~~한명 더 추가해야할듯요
까막괴기가 주특기다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ㅎㅎ 삶이 즐겁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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