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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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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희 조회 656회 작성일 23-05-18 18:11

본문

고향으로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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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게 지켜보던 날씨가 급변한 것은, 고향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였다.

숨 가쁜 현실을 뒤로하고 사 남매가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태풍이 온다고 해도 고향 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싱그러운 날들이 자꾸만 번식해 가는 이 좋은 계절에 고향 맛집 투어까지 계획하며 한껏 부풀던 마음에서 거품이 빠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휴 내내 비를 동반한 강풍이 머문다는 예보가 아무리 요란해도, 서울에서 여수까지 고속도로는 행락 차들로 빼곡하다. 아래로 내달릴수록 잿빛 농도가 짙어가던 하늘에서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수 식당에 미리 주문해둔 장어탕과 장어구이를 찾아 돌산 펜션에 도착하자, 두 동생들이 흠뻑 젖은 채로 마중 나와 있다. 바람을 견디지 못한 우산이 흙비린내 질펀한 정원으로 다이빙을 했다나...


날씨로 계획이 변경되었을 때,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은 동네 마트 식품관 한 귀퉁이를 털어 약간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아쉬운 대로 저녁상을 차리는 사이 오빠가 도착한다. 오랜만에 남매들이 회포를 풀며 아침까지 먹고 느긋하게 섬으로 들어가자던 계획이, 섬으로 먼저 내려가신 사촌오빠의  갑작스러운 전화로 끝이 난다. 폭풍주의보로 오후 뱃길이 끊겼단다. 


밤사이 뒤척임도 무색하게 이른 아침 전화기로 들리는 한림해운의 반복적 멘트는 전 해상 운항중단 소식이다. 이제는 꼼짝없이 뭍에 갇히게 되었다고 술렁이는데, 이번에는 사촌언니가 화태리에는 아직 건너는 배가 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설령, 갈 수 있다 해도 겁이 나고, 갈 수 없다 해도 난감한 이 상황에서, 모험은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강행된다.


강풍의 장난에 현관문이 압축된 펜션을 간신히 빠져나온 우리는, 한참 만에 화태 대교를 건너 철선이 온다는 부두에 도착한다. 간간이 휘몰아친 돌풍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데, 벌써 여려 대의 차량이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다. 거친 백파에 정복당한 저 바다를 과연 우리는 건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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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도착한 철선의 직원에게 파도의 심장은 건재한지 여쭈었다. 답은 차부터 실으란다. 괜히 느긋하게 단잠에 빠져있는 딸애에게 전화를 걸어 간밤에 포항에서 상경한 아들의 안부를 묻는다. 선원의 고함소리에 맞춰 승선하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오빠다. 일상적인 농담이 오갔지만, 바다를 건너는 내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오빠도 무서워서 전화를 걸었을 것이라고, 우리 자매는 까르르 웃는다. 


그 사이 철선 위로 드러난 여천 항 대합실 건물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0분 만에 건너고 보니, 객선을 타고 통학했던 학창 시절에 저장한 그 파도 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배가 바다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할 때마다 오장육부가 우두둑 무너지던 순간을, 내 몸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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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고향으로 가는 길-1]


 [고향으로 가는 길-2]


 [고향으로 가는 길-3]


 [고향으로 가는 길-4]


 [고향으로 가는 길-5]


 [고향으로 가는 길-6]


 [고향으로 가는 길-7]


 [고향으로 가는 길-8]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안개</span>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고향방문이 쉽지 않는 상황인데도
목숨건 철선행이였네요
글을 읽는 동안 심장이 두근두근 합니다.
백파에 몸을 실어본자
그대들만 알만한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2편 기대됩니다.

<span class="guest">정어리</span>님의 댓글

정어리 작성일

어~후~~ 30여년 전, 푹풍주의보가 발효되던 날, 고흥(녹동)에서 완도(금일도)까지 1시간거리를 어선을 빌려 타고 가다가 겪은 공포를 생각하면 지금도 사지가 벌벌 떨립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직장 상사 왈, '근무 하루 쉬는게 낫지, 목숨걸고 오면 어떡하냐고' , 정말 지치고 힘들었으면서도 한편으론 매우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두어달 뒤, 또다시 태풍이란 놈이 우리를 불안케 했습니다. 우리 몇명의 일행은 지난번 상사 말대로 하루 쉬고 이튼날 사무실에 가니, 상사 왈, '당신들이 없으면 누가 일하냐며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라도 와야지..'ㅠㅠㅠ 저는 얼마 뒤 그 곳과(상사) 이별해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는것이 서로에게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지금 상사의 입장에서 생각도 많이 해보곤합니다. ㅜㅜ 여하튼 바다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여일호, 신양호, 신흥호, 창영호 타고 댕기시면서 여러가지로 힘들게 살아오신 고향분들 ! 조그만 더 힘내면서 살아가입시다. 곧 서울에서 금오열도까지 맘대로 질주할 날이 올테니까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와~
그 폭풍우를 뚫고 기어이 건넜단 일이예요?
참 옛날의 폭풍우와 얽힌 수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머리리 스치고 지나가네요.
스릴 넘지는 이야기 잘 읽었네요.
우리들 만이 그 스릴을 절절히 느낄 수 있으리라.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안개님, 정어리님, 감나무님 감사합니다

마음 졸이며 건너던 바닷길이 끊기고
당당한 새길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요.
그래도 한 걱정을 덜어낼 수 있어
참 다행이겠네요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그 바다를 한번쯤은 건넜기에 읽는동안 가슴이 철커덩 거렸습니다
부모님이 계셨고~~흔적이 있기에
용감하게 건널수있었던것 같습니다
~~~후속편 기다리겠습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우리가 화태리 앞 바다를
드디어 건넜는데요.
후속편은 어디로 튈까요?
배운대로 저는 비틀기를 실행하려고 합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
만만치 않는 분량이지만
마음 자리
가슴으로 흡수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시나브로 개척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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