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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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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희 조회 624회 작성일 23-05-23 23:54

본문

고향으로 가는 길 [2]



 그 옛날 화태 대교가 연결되었더라면, 아니 방금 우리를 데려다준 거대한 철선이 버티고 있었더라면, 금오수도를 건너다 말고 서럽게 돌아가는 발길은 없었을 것이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 떠나야 했던, 그날의 흥건한 마음을 풀어낼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  아쉬움은 언제나 무언가를 갈구하게 했고, 그 갈구로 얼마나 많은 길이 만들어지고 걸어가게 했는지...


수평선을 박차고 오른 아침노을이 들풀을 가만가만 더듬을 때, 여천 선착장을 뒤로하고 금오도 해안 도로를 달린 적이 있었다. 간밤에 내려앉은 빗방울들이 풀잎에 맺혀 일제히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던 이 길을 스치면서, 아이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라며 환호했고, 나는 저절로 차오르는 황홀경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는 이제 막 꿈을 향해 뻗어가던 초록의 상처들이 난무하다. 바람에 속수무책인 채로 온 관절을 풀어헤친 나무를 보고도 먹장구름은 물동이를 느닷없이 쏟아냈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그런들 태풍 매미만 할까, 바닷물을 안개 지느러미로 팔랑이게 하고선 급하게 뭍으로 내쫓던 침략의 소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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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오늘을 상향 조정해 주는 것은 언제나 어제의 진물이었다.

띠밭 너머, 미륵 바위, 보습골, 중벼랑, 절터, 노루바위, 이렇게 예쁜 이름을 두고 단 한순간도 서러운 전설을 떠난 적 없다는 그이의 숨결이 그랬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이런 날엔 벌건 잉그락 불에 노랑 조구 한 마리 구워 먹을 수 있다면,* 궂은 날씨가 꼭 할머니 같다며 연신 조잘대는 내 동생 입꼬리는 광대에 걸칠 수 있을 텐데... 우리 할머니는 함께한 세월에 데워놓은 온기에 가로막혀, 끝내 편애의 늪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느덧 우학리, 모교가 보인다. 내가 저 학교마저 상실했다면, 나는 어느 행성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느라 분주할까, 무엇이 되어 예측불허의 앞날을 개척하며 오늘을 잃어가고 있을까. 그러나 네잎클로버는 기어이 내 가슴에 싹을 틔워주었고, 내 좋은 인연의 뿌리를 운명처럼 접속하게 했고, 오랜 세월 푸른 줄기를 뻗어가게 했으며, 때때로 울컥한 꽃송이를 도저히 품을 수 없을 만큼 안겨주었다.


아직도 자세히 보고 싶은 길은 많은데, 앞서간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봤자 지금 이 섬은 고립이고, 우리는 고립무원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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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에세이-----


*p-16 여수/명제

*p-181 그 섬에 갇혀/애린

*p-163 용머리는 나의 꿈/김창애

*p-97 노랑 조구 한 마리/흐르는 강물처럼




지지 않는 꽃


그늘이 턱까지 차올라 무성한 가지를 뻗어도 

할머니 품에 안겨 내 마음을 떨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무심히 던진 동네 꼬마의 돌멩이가 

내 이마를 강타했을 때도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은, 

호랑이로 소문난 할머니가 알았다간 

오히려 맹렬한 포효 세례를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의 위험천만한 처신은 

도랑물에 붉은 자국을 

지우고 또 지우는 거였는데


내 생애 절반의 주눅을 키워준 할머니가 있어서 

자주 구석진 자리에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는 

억지가 사정없이 꺾인 것은, 

얼마 전 집안 큰 언니와 

오랫동안 술잔을 기울이면서였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한 할머니가 

손주를 어미 곁으로 보낸 후, 

날마다 눈시울에 붉은 물을 들여놓고 

꽃이 다 떨어지도록 두문불출했다는 사실을, 

나는 어쩌면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는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울창한 나무 밑에 노란 꽃술을 떨구어 놓고 

거친 목소리를 울컥울컥 토해냈던 것일까.


아니, 나는 고쟁이 깊숙한 주머니에서

할머니가 자주 꺼내 준 잎새를 기억하면서도 

왜 그 동백꽃만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


스토리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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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으로 가는 길-1]


 [고향으로 가는 길-2]


 [고향으로 가는 길-3]


 [고향으로 가는 길-4]


 [고향으로 가는 길-5]


 [고향으로 가는 길-6]


 [고향으로 가는 길-7]


 [고향으로 가는 길-8]


댓글목록

<span class="guest">금오도민</span>님의 댓글

금오도민 작성일

아이디어가 좋네요
그런 에세이 금오도에서 인용할 생각을 하다니
용머리 지명 용어들은 이제보니 더욱 새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span class="guest">이종희</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종희 작성일

오랜 세월 함께했던 마음자리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하다가
지난 금오수도를 어렵게 건너며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저도 예감할 순 없지만
생각의 길은 언제나 길을 나서는 순간
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참 많은 걸음으로 경험했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그리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가다 지치면 쉬어 갈 의자도 마련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금오수도 우리들만이 알수있는 수도이군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시스님 수도는 서울하고
상,하수도만 있는 줄 알았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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