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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애목장 소찾아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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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나무 조회 738회 작성일 23-07-05 15:22

본문

남면지  "금오도에도 목장이 있었다"를  읽다보니 그 유서 깊은 곳중에 하나가 여기 '물애목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추억의 한 순간이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언니는 나보다 1.5살 많은

 아주 작은 꼬맹이 소녀였어요.

봄철 농번기가 되면 사람도 소도 모두 바쁘고 힘든 시기가  됩니다.

사람은 농사일 하느라 소에 메달릴 수 없고

소는 힘들게 일했으니 

상을 받아야 하는데

소에게 줄 상은 무에 있나요?

바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풀 입맛에 맞춰 맘껏 먹는게 

최고의 상이라는 아버지의 소신에

힘든 일을 끝마치면

 항상 우리 소는 고삐를 목에 휘장처럼  휘두르고

자유롭게 산속을 유유히 다니며 풀을 뜯다 목마르면 

물애목장 웅덩이에 목을 축이고

양지 바른 곳에 

편하게 쭈구리고 앉아 

졸다가 되새김질 하다가 하면 

그야말로 소신선이 따로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들, 김센아저씨  모두가 바빠서 소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다는 거

지요.

소는 귀소 본능이 있어서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산속에서 

유유히 노닥거리지만 밤이 되면

마을로 혼자 내려 오는데 그대로두면

밭으로 내려와 농작물을 헤친다는거죠

그래서 깜깜한 밤이 되기 전에 꼭 데리러가야 하는데

깊은 산속에 갈 사람은 언니, 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언니도 나도 소찾으러 가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었지요.

한번은 언니가 소찾으러 가기 싫어 친구집으로 놀러갔다가

소가 말썽피워서

아버지께 된통 혼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정말 어쩌다 가끔은

죽기보다 싫은 

"소찾으러"를 가야 했지요.


어느 봄날

 그날도 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지고

해질무렵이 되자 일치감치

언니와 나는  

엄마가 챙겨주는 긴팔 긴바지를 입고

못내 안쓰러워하는 엄마의 눈길을 뒤로 하고

무서움에 떨며 산에 오르기 시작했지요.

꼬부랑 논뚝길을 걸으며 장님이 지팡이를 두드리 듯 

우리는 긴 작대기로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의 최대한 먼곳

풀을 휘저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언니  

우리가 이렇게 요란을 떨면 

뱀들이 먼저 알고 슬그머니 도망 가겠지?

뱀은 사람이 해꼬지 하지 않으면 절대 우리를 물지 않아 

우린 걱정 없어.

그리고 또 걱정할 필요 없어

만일 뱀이 우릴 쫓아오면

우린 지그재그로  달리면 되는거야

뱀은 절대 우리를 물지 못해!

왜냐하면 뱀은 뼈가 뻣뻣해서 구부리릴 수가 없데

그래 맞아

우린 안전한거야!

뱀걱정에 조잘거리다보니 어느새  

논길 풀속을 무사히 건너고


이제는 흑구덩밭 옆 샛길을 오른다

언니 저기봐!

먹딸기야

응 와 진짜네

여기 봐 

고무딸기도  있다.

우와 진짜 맛있다!

그런데 조심해!

딸기 나무 밑에는 뱀이 도사리고 있데.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큰입을 쩍 벌리고 확 달려들까봐 가슴 조이면서도 정신없이 따 먹다.

소 생각이 난다.

어두워지면 안돼 

빨리 가자

둘은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마을도 보이고 집도 보이고 동네사람도 보인다.

아직은 안심이야.


상수도 탱크의 빨간 지붕을 지나며

너 그거알아?

저 물 탱크 속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뱀이 살고 있데

그런데 다행인건 우린 저물을 마시지 않아도 됀다는 거지

언니야 

하지만 저 물을 우리동네 사람들이 다먹고 있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

뱀이 산다는 말 진짜야?

으응, 누가  그것을 봤데!

하지만 괜찮아 징그럽긴 하지만 뱀은 깨끗한 동물이래!


이제 제당 옆을 지난다.

범접 못할 어떤 무시무시한 힘이 우리를 확 감싸 안을 것만 같다.

무서움을 꾹꾹 누른다

하지만 또 말하고 만다.

언니야 무서워!

제당은 동네 제를 지내는 곳으로 

신에 대한 각종 무서운 야사가 얽혀 있어서

  아이들은 감히 접근을 못하는  곳이었다.

괜찮아 

그런 이야기들은 아이들이 저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어른들이 꾸며  놓은 말들이야.

우리는 달음질치 듯이 제당 옆을 지나고


휴~

이제   산 속으로 접어들었다. 

무서움은 끝이 아니다.

오른 쪽 조금 떨어진 곳에 큰엄마 묘가 있고 사촌오빠 묘도 있다.

언니야

 귀신 나오면 어떡해 

요즘 세상에 귀신은 없어 

맞아 요즘세상에 무슨 귀신이야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말로는 없다지만 마음 한켠엔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다.

금방 산속 숲풀 속에서 멧돼지나 늑대가 튀어 나올 것만같다


언니

우리 소가  안보이면 어쩌지?

걱정마  

물애목장 풀밭에서 얌전히 졸고 있을거야.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물애목장을 향한다.

걱정했던 것 보다 빨리 우리는 소를 찿았다.


저깃다!


순간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우리의 걱정은 모두 사라졌다

우리에게 우리소는 천하무적이다.

짖밟을 육중한 네발, 들이받을 단단한 두뿔, 우리를 무한히 보호해 줄 착한 두눈

풀속의 뱀도  

늑대도 멧돼지도

귀신도

이제는 우리소 한방이면 모두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소가 있었다.

 

이제 됐다.

집으로 가는거야

우리는 급한 맘에 소고삐를 잡고 우리가 앞서 달렸다.

우리의 큰소는 두눈만 꿈벅꿈벅이며 묵묵히 따른다.

이제 해는지고 어스름해지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리 가보고 저리 가보고 

도무지 길은 보이지 않는다.

언니

우리 길 잃은 거야?

길이 안보여!

흐어엉~

흐어엉~

그럼 이제 우리 집에도 못 가는거야? 

언니야 흐어엉~ 흐어엉~


깊은 산속을 헤메다 보니 

우리가 봄가을 소풍왔던 공지에 도착했다.

야  공지다!


그래  천천히 

생각해   보자!

반드시 방법이 있을거야!

순간 번개가 쳤다.

언니야  있다!

뭐가?  

있지~   소야!

소는 우리에게 길을 알려줄거야.

이제 부터 소고삐를 놓고 

무조건 쫓아 보는거야

그러면 소가 알아서 집으로 가지않을까?

그럼 우린 따라만 가는거야

이제 사방은 깜깜하져서 지척만 보인다

  저랴! 저랴!

둘은 고삐를 던지고 애타는 맘으로 

연신 "저랴"를 왜쳤다


와~ 찾았다.

길이 보인다!

우리는 살았다!

둘은 부둥켜 안고 감격에  방방 뛰었다.

소가 길을 찾아 준 것이다.

둘은 부끄러웠다.

야 너

우리 절대 울었다고 말하면 안돼!

응응

언니의 신신당부다.

울어서 빨갛게 충혈된 눈가의 눈물자국을 서로 닦아주며  

배시시 웃는다.


언니야

이제 앞으로는 절대로 길 잃을 일 없겠다.

우리에겐 소가 있잖아 !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이승자</span>님의 댓글

이승자 작성일

ㅎㅎ
감나무님도 소 찾으러 울며 다녔던 기억속에
나의 기억도 소환해 주네요

지금은 소 대신 경운기며 논,밭가는 농기계로 모든 일을 하지만 그 옛날은 집집마다 소가 큰 재산이였는데
지금은 우리마을에는 한 마리도 없고
초포나 직포로 걷기운동이라도 가면 겨우 한 두마리 볼까 말까 하네요
추억 생각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네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ㅎㅎ
우리 세대엔 다들 하나씩 그런 기억이 있나봐요.
같은 시대
같은 추억이 있으니
참 동질감이 들어 더욱 든든 하네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감나무 언니
살아있는 단편 동화
잘 읽었습니다

그 작은 가슴에 자리한
들키고 싶지 않는 감정이
지금을 이끌었을까요

때 묻지 않는 순수가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최고예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애린님
재밌게 읽었다니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남사</span>님의 댓글

남사 작성일

세상에
초등 3때 일인데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해 낼 수가
어제 일처럼 쓰시네
섬세한 묘사에 깜놀
그 길을 함께 걸어갔다
소를 찾아 몰고 온 것 같은
그곳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생생함으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ㅋㅋ
반갑습니다.
그때 그시절 그기억들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그 사건은 내인생에 너무 충격적이어서
난관을 만날 때마다
우리집소 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내 삶의 지킴이가 되어 주었답니다.


언니야
반드시 좋은 방법이 있을거야!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에고~
감나무언니와 감나무의 소먹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네
나도 한 두어번 따라 갔었는데
공지의 억새풀 군락을 잊을 수 없어
물결이 바다에만 이는 줄 알았는데
공지에 일렁이는 억새풀 바람이 환상이였어
우리키를 훌적 넘어 일렁이는 초록 바다....
햐~
우리둘이 갔을땐 소를 금방 찾아서 다행이였어
감나무의 긍정의 에너지가 소 찾으려 다닐때 나온거야
흐미
그에너지가 얼마나 강력 파워 였으면 지금도 써 먹고 있다니
잘 했어요, 잘 했어~~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맞아
그시절 안개님과 난 환상의 커플이었지!
항상 함께 했지
함께 울고 함께 웃었고!

안개야
건강 잘 챙기고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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