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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의샘물(초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개 조회 812회 작성일 23-09-03 00:48

본문

수려한 산세와 인심이 넉넉한 금오도는 

물이 풍부하여 물인심이 따뜻하고 후했다

특히 초포는 샘이 솟아 나오는 땅속의 물줄기가 많아

저수지와 둠벙이 많았고 웬만한 집에는 샘을 갖고 있었다.


여름 가뭄에 수도가 마르면 

식수 해결을 위해 물동냥을 다녀야 했다.

물동냥을 다니다 보니

마을에 예쁘고 시원한 샘이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마을 샘중 

예쁘고 물맛이 시원하고 인상깊었던 

샘들과 인심좋은 주인장들이 

기억의 저편에서 단맛나는 샘물 만큼이나

찰랑거린다.


동네에 수도가 마르면 

마을 사람들은 물동이를 이고 

상심이 언니네집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 거리며 마치 동네 공동우물 처럼 

이용하게 되었다.

두레박을 치며 물푸는 소리와

아이들의 소음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으나 상심이 언니네 식구들은

짜증을 내시거나  화를 내지 않는

고마운 분들이셨다.


상심이언니네 깊고 큰샘은 결코 마른적이 없었다

깊고 맑은 물을 가득담고 있는 샘은

두레박을 내리면 

두레박 가득 담을 수 있도록 물을 내 주었다.


상심이언니네를 다니다 지루한 날은

상택이 오빠네 집으로 물동냥을 다녔다

오빠네는 집 밖에 있는 작은 옹달샘이였다.

시원하고 맛 있는 물을 주인 눈치 보지 않고 

시간제한 없이 가져 올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오빠네 샘에는 붕어가 살기도 했다

어떻게 그 작은 공간에서 생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물동냥 갔다 붕어와 한나절을 정신 없이 놀고 올때도 있었다.

두레박이 아닌 조롱박으로 떠 먹는 샘물은 

중천에 떠있는 달이 가만히 비추는 야밤에

물위에 두둥실 떠 있는 달을 떠서 담을 수 있는 운치도 있었다.


엄마와 함께 산나물 뜯으러 갔다가 어듬이 주니네 집에 잠시 들으게 되었다

주인이 없어서 여기저기 기웃 거리며 집구경을 하는데

집 뒤안에 아주 작은 샘이 있고 샘주변에 도랑을 만들어 

뒤안에서 부터 밖으로 물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샘과 도랑과 도랑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본 순간

마음을 도둑맞은 것 같이 그렇게 정겹고 사랑 스러울 수가 없었다.

물이 흐르는 도랑에서 한참이나 정신을 놓고 물장구를 치고 놀았던것 같다.


국민학교때 늦은목에 사는 친구 의애네집에 놀러 갔다가

주니네집에서 봤던 비슷한 샘이 뒤안에 있었다.

주니네 보다 샘의 규모가 조금더 있었고 도랑의 크기도 넓어 

샘에서 흐르는 물의 양이 훨씬 많았다.

얼마나 반갑던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도랑을 하루종일 자작 거리며 돌아 다녔다.

뒤안의 작은샘

내 어릴적 너무나 갖고 싶었던 샘이였다.


분무골 인수네 앞마당에 큰샘이 있었다.

분무골 공동샘처럼 사용 하고 있었는데

솔고지를 오르기전 인수네 샘에 들러 두레박으로 물을쳐서

한바가지 올려 목을 축이면 그렇게 시원 할수가 없었다.

솔고지를 오르내리며 마시는 한바가지의 샘물은 

추운 겨울은 몸을 따뜻하게 

무더운 여름엔 컬컬한 목을 시원하게 축여주는 은혜의 샘물이였다.


내친구 감나무 집에도 샘이 있었다.

깊은 샘이였는데 언제나 물이 가득 채워진 샘이었고 지붕을 이고 있었다.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샘이였는데, 샘옆에 동이감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가는 감이, 샘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는 정갈한 샘이였다.

감나무집에는 여름이 되면 여름철 과일들이 잔득 담겨져 있었다.


 물을 양동이에 담아 길어 먹던 시절이 

생활에 불편을 주고  뒤뚱거리며 걷다 물세례를 받아 옷을적시어도

그옛날 넉넉하게 퍼올린 고향의 샘물은 

엄마의 마음의 샘과 같았다.

가족과 이웃과 타인과 생명체에게 줄수 있도록 

내안의 샘물도 마르지 않는 사랑이고 싶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금오사람</span>님의 댓글

금오사람 작성일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금오도의 물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았고
심한 가뭄이 들면 개도와 같은 주변 섬에서 물을
떠가려고 찾아온 기억이 떠오르네요
글을 일그니 기억의 한 장면들이 생각나네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샘은 같은 샘인데
이쁜 안개님이 읊어 주니
어찌그리 아름다운지!

좋은 글 많이 부탁합니다.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친구 샘가에 감 우리는 장독이 늘 아른거리고
동이감 나무에 쪼락데기 감나무들이
익어가는 가을이 그리워요.~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상택이 오빠네 돼지우리 위에 달린
무화과는 안개가 따 먹었어요
허락없이 따 먹어서 죄송해요
몰래 먹은 무화과 맛이 일품이였어요.
해운대에 살때
지인 마당에 정말 오래된 무화과 나무가 있었어요
그큰나무에 무화과가 얼마나 많이 열리던지
지인은 무화과 익을때면 제가 무화과를 좋아 한다는걸 알고
불러서 실컷 따 먹으라고 했어요.
소원 없이 질리도록 먹었네요.
지난 주말에
무화과 두박스를 사와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까실한 무화과를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하길래
추억을 먹는다고 했네요. ㅎㅎㅎㅎ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어린시절 샘이 있는집이 참으로 부러웠는데

우리 마을도 서너군데 샘이 있는집이 있었고
마을공동 우물이 있어 매일 하루 일과중 물동이에 물 이고 다녔던 짚으로 엮은 또바리에 끈을 묶어 머리에 받치고
떨어질세라 입에물고 철양동이 중간에 붙어있는 손잡이
붙들고 물동이에 물 출렁거릴새라 바가지 엎어서 물 한동이
힘껏 치껴올려 머리에 이고 즐비하게 놓은 장독항아리 큰플라스틱 물통에 하루에도 몇번씩 이고 날라야
끝이나는 일과
통마다 가득찬 물을보면 왠지 마음 뿌듯했던 시절
눈에 선하네요
잼나는 글 감사요~^

오늘도 해피데이하세요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정지에 있는장독대는 식수용으로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는 허드레물로 사용하여
정지에 있는 물이 떨어지는 날은 날벼락 맞는날이예요. ㅎㅎㅎ
또바리~
오랜만에 들어보니 웃음이 나오네
웃음 주어서 감사^^
친구님도 즐거운 오후되시게~

애린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세상에 초포에는 샘이 참 많았네요

곡성 우물이 있는 집에 살 때
겨울밤 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걸 보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곳에 커다란 감나무도 있었는데
글을 읽다 보니 저절로 영상이 펼쳐집니다

초포의 샘들이 안개님 덕분에
다시 찰랑해졌어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강원도 함백은 겨울이되면 설국나라가 됩니다
5월까지 눈이 녹지 않아 겨울이면 칼추위에
매서운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당연히 수도가 꽁꽁 얼게 되겠지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우물물을 길어 와야 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모두 낮설어 한밤중에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밤중에 나가니 우물 주변이 얼어 빙판이였지요
얼마나 미끄럽던지 살금, 조심 불안한 발걸음이였네요
강원도 함백의 우물은 깊은 우물이였으나
물양이 매우 적어서 우물 바닦에 깔려 있었어요
우리섬 금오도의 풍부한 물이 애틋하게 그리웠던 시절이였지요.^^

<span class="guest">나건용</span>님의 댓글

나건용 작성일

금오도 인심이 좋은것은 물이 한몫을 한것 같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마르지 읺는 샘이 있으니 인심도 묻어나고~

시방도 상심이 언니 상택이 오빠네 우물이 있는지 궁금!

안개님 말씀 따라 동네 우물 구경 다니면 옛 정경의 진수를
볼 수 있겠지요?

옛날의 샘은 나름 작은 권력 이었을 텐데 이읏과 우물을 나누니 이웃 사촌이 되어 서로를 위해주는 매개인듯 합니다.

다시 금오도 방문 한다면 안개님 안내로 동네 샘물 구경 다나면 최고 여행일 듯~~

옛날에는 샘에서 인심나고 이웃과 정보 교류하고 희노애락을 공유 했었을 텐데 지금은 사람이 없어 공유가 안되니 안타까움 인데.. 옛날의 샘물 구경 하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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