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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선생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콩심이 조회 850회 작성일 23-09-08 13:34

본문


새로 전근 오신 선생님 때문에 

섬마을에 획기적인 문화가 시작되었다.

바로 여안 국민학교에 밴드부가 생긴 것이다

우리 언니가 6학년때인 1979년도 일이다.


그때 당시 밴드복은 너무 비싸고 

맞추기도 힘들어서 밴드부에 언니가 있거나 

물려받을 수 있는 동네 선배 언니가 있으면 

우리 친구들은 밴드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언니가 졸업하면서 드디어 나도 밴드부가 되었다.

그런데 언니에 비해 많이 왜소했던 나는 

엄마가 거의 뜯어 다시 만들다시피 해서야 

밴드 복을 입을 수 있었다.


하얀 깃털이 빳빳하게 세워진 빨간 모자와

똬리를 튼 하얀색  줄이 어깨에 붙어있고 

거기에서 한 가닥 줄이 늘어졌던 빨간색 망토,

하얀 플리츠스커트와 반스타킹을 갖춰 입으면

촌스러운 얼굴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우리 밴드부는 틈틈이 연습을 해두었다가 

학교 행사 때가 되면 지휘봉을 든 6학년 언니의 

우렁찬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각자 맡은 악기로 

행진곡을 연주하며 운동장 한 바퀴 돌고 나면 

드디어 축제가 시작되었다.

밴드부 행진은 너무나도 멋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밴드부를 지휘하신 선생님은 약간 곱슬머리에 

이국적으로 잘 생긴 남자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음악 시간을 따로 만들어 

노래를 잘하는 몇몇 학생들을 따로 지도해 주셨는데 

유독 내 목소리를 높이 칭찬해 주셨다.

밴드 연습을 하다가도 앞으로 불러내 노래를 시켰다.

무슨 행사나 조회 때 풍금이 운동장에 나와 있으면 

나는 가슴이 두근 거려 선생님 눈에 안 띄려고 

친구 등뒤에 빠짝 붙어 아무리 몸을 낮춰도

선생님은 금방 나를 찾아내셨다.


하지만 나는 처음 빨개진 얼굴도 

무대만 서면 노래가 술술 잘 나왔다.

선생님 지도 아래 점점 발전한 내 노래 실력은

여수 노래 경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올 만큼 향상되었다.

대회 나갈 때 객선에서 오빠가 

생달걀을 깨서 먹여 주던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산을 넘어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내 재능을 아까워하며 육지로 노래 교육을 권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엄마는 가정 형편도 좋지 않은 데다가

내가 너무 어려 보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셨다.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날 땀을 뻘뻘 흘리시며 

산고개를 넘으셨는데, 결국 우리 엄마를 설득하지 못했다.

내 실망보다 선생님의 노고가 너무 죄송스러워 

선생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밴드부 선생님은 육지로 발령이 났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배웅하는 선착장에서 

얼굴이 빨개지고 두눈이 퉁퉁 부을 만큼

서러운 이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은 음악선생님이 심어 놓고 가신 

밴드부 행진곡이 귓가에 맴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짝!,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짝!,

쿵! 짝!,  쿵! 짝!,  쿵! 짝! 짝! 짝!,

쿵! 짝!,  쿵! 짝!,  쿵! 짝! 짝! 짝!..


낙도 생활도 힘드셨을 텐데

진심을 다해 섬 아이들을 가르쳐 주시고

숨겨진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서

이끌어 주시려고 노력했던 밴드부 선생님!

너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 칭찬을 잊지 않고 있다가

지금은 어느 합창단에 가입해서

그때 부르지 못한 노래까지 실컷 부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댓글목록

콩심이님의 댓글

콩심이 작성일

부족한 글 8월 추천작으로
선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상품권도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애린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오호~♡
저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선생님입니다.
얼굴 마주칠 때마다 빙그레 웃어주셔서
그 환한 미소가 너무 좋아
일부러 근처에 머물고 싶었던 우리 선생님!
너무 잘해주셔서 저도 정이 많이 들었는데요.

악기 연습을 하던 도서관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며 읽던 동화책에 풍덩 빠지던 일이며,
맞춘 밴드복이 도착하던 날
모두 입어보고 서로의 모습에 감탄하던 일이며,
그리고 맨 처음 밴드복을 입고
운동장을 행진하던 일들이 꿈처럼 스쳐갑니다.
저는 맨 앞줄에서 작은 북 쳤어요 ㅎ

정말 너무 멋있어서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동네 어른들도
우리 밴드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요.
그 다양한 악기를 일일이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너무 소중한 경험이 우리에게 있었네요.
그때 밴드복이 2만 원 적지 않은 돈이었는데
다행히 우리 엄마가 허락해 주었어요.
제가 우리 서고지 친구들은
밴드부에 다 들어간다고 했거든요 ㅎㅎ
그게 아직도 가슴에 남아 아이들이
뭐를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하라고 했어요.

우리 졸업식 때,
너무 작은 아이가 단상에 올라
불러주던 졸업식 노래가 그렇게 아름다운 곡인 줄
정말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사실은 졸업식 날 눈물 한 방울 정도는 떨어뜨려야
졸업식을 치르는 것인데
저는 그날 그 노래에 외도를 하고 말았어요.ㅎㅎ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가
어찌나 청아하고 예쁜지
제 귀가 그때까지 듣지 못했던 소리였거든요.
제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아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찡했습니다
하지만 콩심이님!
엄마의 선택은 너무 탁월했어요
그 어린 콩심이님이 가족과 떨어져 살았으면
날마다 엄마 아빠 보고 싶은 서러움에 병났을 걸요ㅎ
그덕에 재미난 길을 걷었고,
또 걸어가고 있잖아요
너무 예쁜 추억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부터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 ㅎㅎ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콩심이님 글을 읽으며 학교는 달라도
떠오르는 추억이 있어요
두모국민학교도 밴드부가 어마어마 했지요.
여남국민학교와 마짱을 뜰 정도였으니
그때의 시절로 돌아간듯 합니다.
저도 애린님 처럼 다음글이 기대됩니다.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정말 잊고 살았던 국민학교때 밴드부
내가 다니던 여남국민학교에도 밴드부가 있었네요
맨 앞에 지휘봉으로 지휘를 하는 단장 ㅣ명
첫번째줄에 오른쪽에 큰북 1명 옆으로 작은북 3명
둘째줄에 실로폰
세째줄 아코디온
네째줄 탬버린
다섯번째줄 트라이앵글
여섯번째줄 부터 피리
나는 5학년때는 작은북
6학년때는 단장을 했는데 지휘봉을 들고 방향을 바꿀때마다
호루라기를 불어 먼저 신호를 준 다음에 우측, 좌측, 앞으로
방향을 지휘봉으로 가르키면서 행진를 하곤했던 추억

국민학교 다닐때 큰가크고 날씬해서 단장을 시키셨나(ㅎㅎ 자화자찬) 흰색장갑, 빨간색 손수건 목에메고 노란색 원피스, 노란색 베레모를 쓰고 지금은 운동장이 작아 보이지만 그때는 운동장이 이끝에서 저쪽끝까지 얼마나 길고 멀던지 방과후에 매일 운동장에 모여서 연습했던 그 때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콩심이님이 어린시절 추억을 소환해 주셨네요
때로는 꾸중도 듣고 칭찬도 들으면서 그래도 밴드부의 자부심이 대단했지요
밴드부에 참가하려면 음악적 감각이 있어야해서 선생님께 테스트를 받아야 들어 올 수 있었는데 ㅎㅎ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더 밴드부
나의 어린시절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눈을 감고
추억의 나래를 펴 보니 얼굴에 웃음가득 미소가 ㅎㅎ
감사해요 콩심이님 잊고 지냈던 추억 꺼내 주셔서
이래서 금오열도 홈페이지가 우리내 추억을,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매일 한번씩 방문을 하게 하니 고생하시는 홈지기님 감사하네요
잼나는 글 잘 읽었네요
남은 시간도 행복하세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솔향채님
정말 대단한 기억력이시네요
지휘봉을 들어서 그런건가요
제 경험으로 보자면
지휘봉은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해야
들 수 있었어요. ㅎㅎ

홈지기님 저도 감사합니다 ㅎㅎ
잃어버린 꿈을 꾸게 해주시고
오랜세월 끊임없이 공부하게 해주신 덕에
오늘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ㅎㅎ 애린님 쬐금 그런듯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들께서 대단하셨네요
여러가지 악기를 다 가르쳐야 했으니

초등학교 선생님들께서는 만능이 되셔야 했지요
과목을 다 가르쳐야 했으니 ~~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콩심이님의 댓글

콩심이 작성일

안개님, 솔향채님, 애린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우리 모두 낙도 금오열도에 살길 참 잘했어요.
저도 초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답니다.
아름다운 추억들을
공간이 달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니 기쁨에 전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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