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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마지막 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종희 조회 940회 작성일 23-11-07 00:0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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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질어서 도저히 안 되겠네”


끊임없이 퍼붓는 빗줄기가 사흘 새벽에 이르자 발인식을 미뤄야 한다는 어른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아버지도 우리 곁을 떠나기 싫었던 것일까. 오일장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굵직하게 퍼붓던 빗방울이 흩날리고, 허공을 부유하던 슬픔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틀이 지나고 발인식이 진행되었다. 눈부신 햇살의 축복을 받으며 황토 흙 마당에 놓여있던 꽃상여가 상두꾼들에 의해 들려지고, 만장 행렬을 앞에 둔 선소리꾼의 상엿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새랍을 나선 꽃상여는 우리 집 돌담 건너편 너른 평지에 올랐다. 그 평지에서 상여꾼들이 앞으로 나갔다가 뒷걸음치기를 반복하는 동안 선소리꾼의 애끓는 소리가 들렸다. "못 가겠네~ 못 가겠네~" 유독 뚜렷하게 들리는 그 마디가 내 식도를 가득 채운 설움으로 걸려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밀고 당기는 이별식이 지칠 때서야 꽃상여는 연둣빛 생명이 왁자한 들길을 스칠 수 있었다. 동백꽃 뚝뚝 떨어진 터널을 지나 솔밭 길에 올라도, 상여 꽃은 꺾일 줄 모르고 환하게 나풀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 산밭을 돌아보실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지, 너무 어린 우리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아버지의 무너진 어깨는, 어른들이 애써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슬프거나 힘들거나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어떤 의지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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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빠져나오자 무수한 빗줄기는 곧바로 수직 낙하한다. 따뜻한 옷에 동생이 만들어준 비닐 우비까지 입었으니, 이 비는 해피엔딩으로 직행하는 동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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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들풀 세상으로 변해버린 묵정밭이 보인다. 맞은 편  돌담가에 동그랗게 도드라진 수풀이 보이고, 그 앞에는 터를 늘린 머위 서식지가 보인다. 아무리 잘라내도 뿌리내린 잡목들은 작년보다 더 숫자를 늘렸고, 아랫길을 두고 이어진 밭은 대나무 숲이 차지해 버렸다. 내 친구네 집 뒤란에서부터 올라온 저 대나무 숲을 볼 때마다 저절로 친구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첨대하나 얻겠다고 갔다가 매번 호되게 야단만 맞고 돌아온 동네 오빠들이 생각난다. 결국 아무도 가져갈 수 없었던 대나무는 마당과 뒤란을 넘어 모든 걸 잠식하는 욕심쟁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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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고개 들어 초록 너머 무채색 하늘을 보고, 언제나 그리운 섬, 부도를 본다.* 그리고 바다를 본다. 숱한 파랑을 스쳐왔으면서 너른 바다가 보이는 산밭에 머물고 싶었던 아버지 마음은, 못가 본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그 파랑을 정면으로 맞서며 건넌 푸른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물 보러 가기*를  지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마 접을 수 없는 아쉬운 날들만 고개를 휘저을 뿐, 오늘도 하늘은 바다에 수장되어 짙은 침묵으로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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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열도 홈페이지가 운명처럼 내게 온 세월도 성인이 되고도 몇 해가 더 흘렀다. 어쩌면 내가 몰랐던 고향과 부모님과 친구들을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고 깊게 알게 되었는지 모른다. 고향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막연한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내면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며 울고 웃던 날들이 꿈처럼 흘러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날 불쑥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반가움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유년의 서툰 나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마치 섬을 떠나서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뭍으로 뭍으로 뻗어갔지만, 결국 사람들은 고향을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놓고 있었다. 새랍을 나서면 보이는 나로도마저 그리움으로 다가왔고,* 허물없이 지낸 고향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 모든 마음이 나 혼자만의 고독이 아니라는 것을 참 많은 사람들이 풀어주고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


같은 마음으로 복받치는 감정은, 공감대 형성이거나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살며시 놓고 간 한 줄의 답글마저도 온기로 느껴져 코끝이 시큰할 때가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글에 매몰되어 온종일 잔물결을 가슴에 가둔 적도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쓴 글같이 친숙했고, 그 추억 속에 들어갈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추억을 꺼내서 그늘을 밀어내고 그것으로 다시 힘을 얻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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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달려가 꼭 껴안아주고 싶은 유년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만나고 싶은 동화가 있다는 것이고, 고향에서 보낸 시절이 얼마나 귀한 날들이었는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직접 보거나 겪지 않고는 펼칠 수 없는 섬세한 묘사와 애환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금오도 에세이를 단번에 다 읽지 못하고 오랜 날 펼쳤다가 덮었다가를 반복했다. 글이 풍경이 되어 채워진 지면에 그려진 그림은 너무 익숙해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 선명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온 지난한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다양한 칼라로 치환되고 있었음을 알지 못한 한 채, 참 많은 세월을 보냈다.


너무 오래 머문 것 같아 때때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고,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각인될까, 두려운 날도 있었다. 그 모든 마음을 극복하는 것도 용기였고, 무언가를 쓴다는 것도 용기였다. 더 잘 쓰지 못한 무력감에 휩쓸릴 때가 많았고, 더 알지 못함에 절망한 날도 많았다. 그래도 무작정 걸었다. 모르면 모른 대로 쓰고 알면 아는 대로 쓰고, 어떤 목적도 꿈도 없이 그날그날을 채우며 살아왔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현재 나를 이루고 있는 근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20여 년이나 걸렸다. 고향 홈페이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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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 모두 짧게는 몇 시간에서부터 길게는 수십 년을 고향을 떠나본 이력이 있다. 여전히 고향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고,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 금방 마음이 다정해지고 환해지는 언어들이 "왜, 이제야 왔는가~밥은 묵었는가~얼른 오소~"라고 반겨줄 것 같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고향으로 걸어가고 있고, 고향으로 오는 사람들을 마중하고 있다. 바로 이곳으로 이어진 푸른 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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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에세이------


P-179  나로도 생각/명제

P-156  고향 친구/이승업

P-229  내 고향 부도/배율희

P-235  물보러 가기/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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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으로 가는 길-1]


 [고향으로 가는 길-2]


 [고향으로 가는 길-3]


 [고향으로 가는 길-4]


 [고향으로 가는 길-5]


 [고향으로 가는 길-6]


 [고향으로 가는 길-7]


 [고향으로 가는 길-8]




댓글목록

이종희님의 댓글

이종희 작성일

긴 글 끝까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지난 5월 다녀온 고향을
현재 진행형으로 쓰면서
오랜 기억들을
틈틈이 접목시켰습니다.

단편으로 읽어도 무리 없지만
새로운 분들을 위해
지난 글들을 아래에 붙여두었습니다.

감사하니다.
늘 평안하세요

<span class="guest">선우향</span>님의 댓글

선우향 작성일

결국 저를 울리시는군요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언제 만나게 되면 손수건 드릴게요
gumo.co.kr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span class="guest">콩심이</span>님의 댓글

콩심이 작성일

가슴이 먹먹한 건 가을이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세월을 지나고 어느덧 옛 기억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슬픔은 기억의 그날을 지나갑니다.
님의 글에서 잠시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멍 자국이 있습니다
꺼내 놓을 시간이 부족할수록
그 멍은 흐려지고 흩어집니다.
그래도 가끔 되돌아 보아준다면
지금 얼마나 다행인지를 알게 되어요

<span class="guest">푸른바다의전설</span>님의 댓글

푸른바다의전설 작성일

행복의 비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 또한 다른 곳의 홈지기로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글쓴이의 감명깊은 글은 추억의 보금자리마냥 잊혀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고향에 대한 향수와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아린다. 좋을 글 감사합니다.~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명심하겠습니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네요
늘 행복하세요 ~^^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다알랍딘게 잉~~~
윗 댓글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애린님의 글 마지막편부터 읽었네요.
아침 7시 맨발로 앞산 몇바퀴 도는 일로 시작한 하루 이제야 에쏘 라떼 등등 각종 음료 서비스를 멈추고 쇼파에 기댈 수 있는 시간 확보.
첫편부터 읽어보렵니다.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미리내님이
금오열도홈 고유명사일 수밖에 없음이
이 답글로도 여실히 드러나네요
고향홈 외에는 한가하실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ㅎㅎ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이종희님
고향으로 가는 길
긴여정 깊이 있는 글 참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부탁 합니다.
날씨가 참 쌀쌀하네요
건강 조심 하고 화이팅!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너무 긴 글의 부작용 우려를
나름의 방식으로 뛰어넘으려고 했지만
어떤 것으로든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부족함은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이
채워줄 것으로 믿습니다.
감나무님의 응원으로 많은 힘을 얻습니다.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난 고향가는 길이 막혀 없네요 ㅎㅎ
고향을 떠나야 고향가는 길이 열린다는 종희님의 그 말이
그리고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고계시는 모든분들 나이가 들수록 더 애잔한 고향생각이 사무치는
그럴때면 좋은 책 금오도 에세이를 읽어보세요
어느새 고향에 와 있을겁니다.

고향가는길 매번 잘 읽었네요
애쓰셨습니다.

앞으로도 잼나는 멋진 글 기대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한밤 되세요^~^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짧게는 몇 시간부터
길게는 수 십 년 동안
고향을 떠난 이력이 있는걸요...
늘 고향으로 오는 마음을
마중하고 계시잖아요..

<span class="guest">이수영</span>님의 댓글

이수영 작성일

고향으로 가는길이
이곳으로 연결되어 있었군요
바빠서 오늘에서야 모두읽었습니다~
고향홈페이지에 올라온 수준 높은글덕분에
요즘 행복합니다
계속 좋은글 많이올려주세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감사합니다
행복한 여정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추억들 풀어주세요
항상 시작이 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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