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자유게시판

본 홈페이지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금오도ㆍ금오열도 홈페이지입니다. 본 홈페이지에 있는 모든 게시판에 로그인 없이 누구든지 자유롭게 글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사진은 100장, 동영상은 100MW 까지 가능합니다.


바람이 분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산벚나무 조회 479회 작성일 23-12-09 13:17

본문

바람이 부는 날 방문을 열고 오랑 돌담 언덕 대나무숲을 바라다보면 영화 취화선의 한 장면 같은 바람에 누웠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춤사위가 나를 매혹시킨다.

낙엽을 털어 낸 앙상한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날 갈 때마다  웅웅거리는 산들의 파동이 끝이질 않고 건너편 능선에 도미노같이 파급되는 짜밤나무 군락의 탄성에 고뇌를 실어 보내기도 한다.


고향에 기거 후 가장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중 하나가 이 바람이다.
열흘 가까이 불어대는 남서풍은 금오의 일상이 멈추게 하는 힘을 과시했고 수목이 무성한 산등성이 전답을 밀어내어 제주에서  구매해 온 백여 그루 감귤 나무를 식목을 하고 다음 해 이 바람 속에 동사시키니  여린 상실감으로 여러 날을 누워있기도 했다.


매실밭 모래가 날려 주차장과 동구 밖 길위로 수북이 쌓이고  마당과 장원에 낙엽과 뒤엉킨 잔해들은 새벽 손을 붙들어 매곤 한다.

바람은  융기된 대지의 기압 변화에서 비롯된 금오의 상징적인 기후다.
돌 담장을 쌓고 나직한 지붕을 쌔(억새풀)나 짚으로 이엉을 짜서  새끼줄로 지붕을 엮어 거친 바람을 막아야 했다.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지난한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도 이끼 낀 돌담들을  볼 수 있었고 산길 주변에는  돌들로 울타리를 두른 밭들이 그 유산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서 덧없는 세월의 무상함이 바람 속에  묻어 나온다.

유년 시절 세찬 바람속에 나뭇짐을 짊어지고 온몸으로 버티며 내려오다 지게를 받쳐두고 숨을 고르던  그 언덕에선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보니 ~" 란 시구가 리듬을 타고 가슴에 전해진다.
바람이 불어 좋은날 이곳을 찾아 왔다는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때론 바람처럼 살고 싶다.
어떤 장애물도 거리낌 없이 타고 넘는 그 자유스러움이 부럽고 비교 불가한 부드러움이 자아를 넘어서기도 한다.

그러려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인생은 실전이기 때문이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마음을 저며오는 지난날의 회한들이 온몸을 타고 전율처럼 흘러내린다.

황량한 들녘 아래  바람에 나부끼는 무지랭이 풀섬 속에서도 새로운  싹이 움트듯이,
 백년초가 장독대 위  살을 애는 바람 속에서도 꽃을 피우듯이,
그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바람이 분다
창백한 푸른 밤하늘에도 이 겨울 바람이 불어온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바람이 분다
허허로운 벌판에 삭바람이 분다.
금오도의 바람은 유난히도 거세다
살갗을 에이던 그 바람은 여전히 숨을 멈추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불어오리라
허나 내가 보았던 산벗나무 언덕은 아직도 여전히 따뜻한 햇살이 보듬고
밀감나무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리라!

기대됩니다.
푸르게 변해 있을 산등성이 전답이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에구... 그런 일이 있었네요.
아무리 거센 바람 길을 걸어도
새랍만 들어서면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
너무 고요했던 기억이 있어요.
돌담에 구멍이 그렇게 많이 뚫렸는데도
막상 그 안에만 들어서면 딴 세상 같았는데
자유에 대한 갈망은
어떤 구속에서나 가능할 텐데
막상 자유 속에서는 자유에 지쳐간다는
류시하님 시가 생각나네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지금 고향에서 올라온
대방어 먹으러 가느라고
서울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데
가야할 시간이 아득합니다 ㅎ

미리내님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정기 검진에서 당화색소 수치가 경계에 근접하여 경고를 했는데도 난 대봉 홍시의 유혹에 넘어가버렸습니다.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똘감 홍시라도 어려서부터 많이 먹어서인지
고구마도 호박 물고구마가 좋고 홍시라면 자다가도 일어납니다.

어려서 심포 몰랑에 귤 밭이 있었어요
남향 밭으로 망산을 건너다보며 청귤일 때부터 지나는 꼬맹이들이 군침을 흘리며 바라다 보고 그 중 몸이 날랜 내 친구는
주머니에 몇개 따와서 살짝 내 손에 쥐어주곤 했었지요
그걸 교실에서 까먹으면 향기 진동할테니 점심시간 도시락 들고 건너 교실 뒷 동산에서 친구들이랑 먹고 내려 오면 운동장에 먼저 교실서 점심 먹은 친구들이 놀이판을 벌이고 있었어요

아마도 따스한 남쪽 밭에다 둘레 돌담 쌓고
어릴땐 하우스 튼튼하게 만들어 키우면
고향에도 귤 농사 가능하지 않을까요?
칠전팔기 될 때까지 해 보셔요
폰 카 들고 처들어 가보게요.^^

<span class="guest">부삭바구</span>님의 댓글의 댓글

부삭바구 작성일

아하` 그랬군요, 그때 심포몬당길 옆 감귤밭에서 채 익기도 전에 길쪽으로 누가 따간다며 원두막을 세워 감시를 하니마니 논란이 있었는데
50년이 넘어 범인이 밝혀지는군요,ㅎ
그 감귤 익을무렵이면 품종이 뭔지 좋은향기도 나고 서리해 먹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어느해 추운 겨울에 다 동사를 했답니다.
그 바람이 산벚나무님 글에서처럼 매서운 남서풍이었나 봅니다.
죽고 난 이듬해 밑동에서 싹이 돋아나 다시 사나 싶었는데 탱자나무였지요.
그 감귤밭으로 인해 제미있는 추억거리도 많은데 다 소환되는군요,ㅎ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 작성일

외가 심부름 다녀오며 저 쪽 길이 무서워 큰 길로 올 때 보면 원두막 결국 세워져 있었어요
그 먼 곳 사는 나도 맛 볼 정도이니 얼마나 손을 탔을까요 ^^

<span class="guest">이승자</span>님의 댓글

이승자 작성일

마을마다 바람의 강도가 다양하다.
움푹 들어간 장지 마을은 포근한 듯 조용하고
초포마을의 하늘바람은 강도가 평상시에도 태풍이다.
하늘바람이 부는 날에는 영락없이 강풍주의보가 내려
모든 선박이 발이 묶인다.

따뜻한 산등성 밭 귤나무 바람을 잘 이겨내 맛난 귤 시식하러 가도 되남유?

멋진 밤 되세요~~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 바람이 ,
힘들때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dalmuri님의 댓글

dalmuri 작성일

바람ᆢ

옛사람들 표현대로라면
몸서리 난다고 했죠ᆢ

바지게 지고 가다
그 바람 때문에
안 굴러본 사람 어딨을까요?

구절구절 공감입니다.

산벚나무님의 댓글

산벚나무 작성일

바람 하면 여러 연관 어를 떠올릴 수 있지만 비비안 리와 클라 클 케이블이 주연했던 추억의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잊을 수가 없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라는 명대사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고요. 감사합니다.

COPYRIGHT Ⓒ 금오열도.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