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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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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lmuri 조회 286회 작성일 23-12-12 09:11

본문

동트기 전
어깨에 묻은 어둠을 툭툭 털어내며 출근하려는데 목젖으로 한기가 스미 운다.

문득 그 어린 시절
건장에 해우 널러 다니던 그때가 홀연히 떠오른다.

군불 땐 온돌이 식을 때쯤 창호지 문 틈 사이로 나일론 양말이나 잠바 때기로 해풍 막으려 널브러져 있고

온기가 식어 저절로 새우잠 자다가 참다 참다 마루에 무릎 꿇고 요강에 오줌 한번 갈긴 후 조카들과 체온을 부대끼며 또 잠을 잘라치면

찬물 담긴 바가지에 손을 적셔 내 목에 슬그머니 문지르며
"아가! 니가 일어나야 집안이 편타 이~"

세 번, 네 번 부탁하듯 속삭이며 엄마가 깨울 때면 그 어떤 누구라도 감화되지 않을 수 없다.

주섬주섬 꿰맨 양말 두 켤레 포개 신고 샛별 보며 저수지길 건너 건장에 갈 때면 저 개머리 너머에서 뻘끔을 훑고 온 바다 바람 탓에 눈물은 절로 흐른다.

큰형 내외는 막사 안에서 해우를 뜨고 나는 당그대로 해우를 휘젓고 있다 보면 거센 바람으로 건장이 휘청거리고 어느새 예배당 종소리가 울리던 그 시절

그 못 잔 잠을 보상받으려 나는 지금도 긴 밤이 그립고 겨울밤이 좋다.

울 엄마, 큰 행님, 큰 행수는 도대체 얼마나 빨리 일어난 것일까!

더 큰 보상받으려 긴 밤을 주무시려 먼저 가신겐가!

얼마나 더 많은 슬픔과 이별을 해야 하는 걸까?

울 엄마는 날 깨우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펐을까!

모두 다 그립고 아련하다.

울 엄마도
큰 행님도
그리고 큰 행수도ᆢ

어 허~ 

댓글목록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전율입니다.

아가! 니가 일어나야 집안이 편타 이~

어머님의 안타깝고 섬세한 마음이 온몸을 감동시킵니다.
그래서 달무리님의 감성이 이렇게 예쁘게
글 속에서 푹 녹아 있나 봅니다.

오늘은 님 덕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길 듯 합니다

dalmuri님의 댓글의 댓글

dalmuri 작성일

턱 없이 부족합니다.

느낌 그대로
생각 나는 대로
글을 써보지만
이렇게 박수를 쳐주니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서 더 그럴까요?
이제는 바래질 만도 한데
그날들의 풍경들이 내 곁에 있는 듯
한참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오후 시간 보내세요~^^

dalmuri님의 댓글의 댓글

dalmuri 작성일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은게 있다더니
향수가 그러한가 봅니다.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

미리 작성일

카페 봉사하고 이제야 폰을 열어봅니다.
아무리 나잇대가 비슷해도 조카님들과 삼촌은 저 윗쪽 상자리와 아랫상 차이이니
먼저 본을 보여야 하는 자리가 거기였군요.

가끔 첫째는 세살 때나 일곱살 때나 스무살 때나 언제나 아기였던적이 없고
동생의 형이나 오빠나 누나여서
본이 되어야 하고 양보해야 하는 자리였지요.
하물며 삼촌이었으니
어머니께서 참 현명하시고 다정하신 분이셨군요. 체격도 아담하시고 고운 분이셨는데.
형님도 가끔 뵌적 있었지요.

여기서 해우는 김의 고향 사투리지요
또 다른 해우는 바다에 앉은 안개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절에서는 뒷간 가는 일도 해우라 하더군요^^

dalmuri님의 댓글의 댓글

dalmuri 작성일

지금에 와서야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긴 하나 당시에는 절대 공감 할 수 없어 투털대기만 했었고 마냥 참는거에 익숙한 삶이다 보니 지칠만도 했겠다 싶어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ᆢ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그냥 눈물이 납니다
보고싶어도 볼수없는 그리움
얼마나 아파야 엷어질수있을까요?

dalmuri님의 댓글의 댓글

dalmuri 작성일

혹자는
시간이 흐르면 낳아질거라던데

희색되는 것도
빛이 바래지는 것도 있겠으나
더러는
어제인 듯 생생한것도 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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