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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애린 조회 298회 작성일 24-02-06 12:0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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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진실  

    

                            이종희



비 오는 밤이면 

흩어진 몸을 찾으려는 유령들이

울음을 앞세우고 뭍으로 밀려 나온다고 했다.


조약돌이 동그랗게 마모된 것도

노송이 조각조각 부서진 것도

미처 짐을 꾸리지 못한 유령들 때문이라고 

물꽃을 피우는 무수한 증언이 구름다리를 향하는데

이야포는 짠물에 저당 잡힌 과거를 빼내느라

끊임없이 파도의 옷자락을 끌어당기고 있다.


바닷가 아이들의 초롱한 몸짓으로는

잘려나간 미래를 건질 수 없을 것 같아

이 땅의 온기가 밀물진 바다를 향해 

숨 가쁘게 걷고 또 걸어왔는데

어쩌다가 빈 껍질로 볼록해진 세월과

끈을 놓지 못한 유년의 악몽은 

치유되지 못한 붉은 통증으로 뒹구는 걸까


화약 연기 낭자한 기억을 들추어

고개를 떨군 채 왈칵 쏟아진 적 있었는지,

두 손을 모으며 깊게 수장된 적 있었는지,

한 번쯤 앙다문 어금니를 풀어보고 싶은데

칠흑의 속내가 선명한 화면 속에는

애써 불안을 뽑아내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선량한 터전이

전쟁놀이의 가벼운 표적지로 속절없고

가슴을 상실한 얼룩무늬 축배만이

장난기 어린 농담으로

숱한 주검이 쏟아진 불기둥을 담아내고 있다.


저 둥근 바닷속 붉은 비린내는 

언제쯤이면 투명하게 바래질 수 있을까

바래진다면 까닭 없이 식어버린

서러운 체온을 위로할 수 있을까.


아직도 포구는 

이생을 거두느라 가라앉은 난파선과

감쪽같은 시대를 찾아 나선 온기만이

가슴에 멍울을 키우며 출렁이고 있을 뿐,


나라의 말씀에 귀 기울인 죄 너무 선명하여

길 잃은 유령을 받아 줄 육지는 보이지 않는다.




https://youtu.be/Rs8MDpmKIHU?si=Q_lavZeXmuk2UBmA 

[여수 MBC 보도특집 다큐멘터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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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애린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이 글을 완성하려고 이야포에 대해 자료를 찾다가
여수 M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날 주위 할머니들한테 듣긴 했어도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있었는 줄 몰랐네요.
많은 세월이 흘러 흔적을 지워버린 저 포구에서
우리는 참 예쁜 추억을 쌓으며 자랐습니다.
~~~~~~

*이야포 비극*
이야포 사건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3일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해상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피란선을 미군 폭격기가 기총 사격해 승선자 250명 중 다수가 사망하거나다친 대규모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이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기록에 따르면 부산에서 출발한 피란선은 통영과 욕지도를 거쳐 이야포 포구에 도착하였고,다음날인 3일 아침 미군 폭격기 4대가 나타나 무차별 사격을 가해 150여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폭격으로 바다에 흩어진 시신을 피난선에 모아 기름을 부어 3일 밤낮으로 태운 후 바다에 수장시켰고, 일부 시신은 산에 매장됐다고 기록은 전한다.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

미리 작성일

저 아름다운 포구에서
어찌그리 잔혹한 일이 ㅜㅜ
저 바다 밑에는 그 흔적이 가라앉아 있을까요?
여순 사건 때도 고기잡이 배까지 폭격해서
수장시켰다던데 마음이 아퍼요

저 아름다운 포구에 왜 민가가 많지 않나 이상타 하며 둘러 보았었거든요.

포구가 물병 같고 멀리 역포쪽 산이
병마게 뽑아 논 듯 보입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네 저도 다큐멘터리 보면서
그날 화양면 조기 낚시 중인 어부들께도
사격을 가해 여러분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노근리 사건까지, 시청하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는데
이야포 바닷속 탐사 화면은
녹슨 부속품들이 쌓여있고요.

이야포 포구는 너무 예쁜데
태풍에는 약하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바닷가쪽은
파도가 자갈을 가득 퍼갔다가
던져 놓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래요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몇년전 학교 근무 할 적에
이야포의 추모행사를 학생들이 참석한다고
간적이 있었는데 자세한건 잘 모르고 갤러리에 추모행사 사진을 올린적이 있었는데 이런 커다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중에 비극이였네요.
가슴이 짠해 지네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저도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에 짐작만 하다가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참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소형 선박을 상대로
전쟁 연습을 하는 화면을 보면서
감정이 이입되어서...

누구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고
자립 하는 길이 최선인데요
쉬운 일이 아니네요

dalmuri님의 댓글

dalmuri 작성일

시를 읽으며
조금은 난해 하였는데
아래 댓글의 이야포 비극을 보니
아ᆢ소리가 절로 납니다.

그토록
맹신하였던 미군으로부터
참혹한 슬픔이 있는곳이군요.

같은 곳 출신인 우리들도 실체적 진실을 모르고 있는데 그 누가 관심들 가져주려는지ᆢ

시를
다시한번 더 생각하며 읽어야겠습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첫 연은
제가 이웃 할머니 이야기를 그대로 쓰기엔 너무 무서워서
거르고 걸려 압축 묘사했지만 또 자세히 읽어보면 너무 끔찍한데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들도
그런 일을 직접 당하신 분들 생각 못 하고 살았네요
언젠가는 쓰고 싶었던 시였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당시 미군들의 마음 가짐 등등 많은 걸 알게 되면서 시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포는 구름다리(본동 방파제 역할을 함)가 있는 참 예쁜 포구였고 안도리 사람이라면 그곳에서의 추억이 있을 텐데요.
우리 어렸을 때 이야포가 너무 깨끗했던 이유 중 하나는 군불 때는 부삭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ㅎㅎ

설을 앞두고 마음이 참 분주합니다
오늘도 파이팅하세요~^^

dalmuri님의 댓글의 댓글

dalmuri 작성일

군불 땐 부삭ᆢ

정겨운 언업니다.

<span class="guest">산적두목</span>님의 댓글

산적두목 작성일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여수지역사회 연구소장 박종길 씨가
화양면 홈지기(지금은 휴면)로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예전에 저도 화양면 홈페이지에
자주 방문하였는데요.
다시 홈페이지가 활성화된다면
그때처럼 서민철님 서철기님 산적두목님
자주 뵐 수 있을 텐데요 ㅎㅎ
건강하게 잘 계시겠지요?
산적두목님 덕분에
얼굴도 몰랐던 화양면홈지기님을
다큐멘터리 속에서 뵙습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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