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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도 병인양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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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벚나무 조회 448회 작성일 24-02-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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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비웠던 설날이 아쉬웠던지 평소에는 불러도 잘 가지 않던 지인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면피성 같은 해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휴가 끝나는 날  써니에서 만나 차를 나누고 상록수에서 술 한잔하게 된다.

행선지가 따로 있었지만 노상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오랜만에 상냥하게 웃으며 다가서는 상록수 여 주인장을 만나다 보니 반가움에 갈대 같은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작년에 퇴직을 하고 마누라 가게일를 돕고 있는 술 보 후배 녀석도  건강하게 잘 버티며 또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귀향하고 일 여년 까지 만 해도 텃새들의 둥지를 지켜 주기위해 나름, 음주 가무를 장착하고 묻어 지내려 했으나  이어지는  자리로 인한 내면의 피폐와 건강이 여의치 않아 수도승처럼 은둔 생활로 들어가다 보니 팬(?)들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ㅋ

술자리에 가면 주거니 받거니 업된 만큼 리렉션으로 장단을 맞혀  줘야 되는데  말도 없이 안주만 축내고  앉아있길 반복하니 주구들도 지쳤는지 차츰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칼 같은 절제로 유혹을 털어내어 지금과 같은 평안을 얻을수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쓴웃음 짓게 하는 에피소드가 많기도 하다.
술을 좋아하는 어린 후배가 하나 있는데 술이 먹고 싶거나 외지에서 누가 찾아오면은 그때 마다 부른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와서 갖은 아양에, 따라 나서긴 하지만 그 후로는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 산책로 숲길로 탈출을 하곤 했다.

한번은 늦은 밤 공포의 그 싸이카 소리가 나길내 오랑 대밭 산책길에 몸을 숨기고 경계를 서며 동태를 감시하고 있는데 집을 샅샅이 뒤지더니 호신용 랜턴을 찾아 들고 산책길 수색에 나서는 바람에 전망대까지  쫓기게 되고 숨막히는 교전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멈추어있던 시간 여행이 추억들을 소환하면서 그들만의 카오스 속으로 첨벙  빠지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품같이 변하지 않는 다정함으로 다가오기에 여간해선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을 사랑한다.
지극히 보편타당한 정서를 가지고 자연에  순응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사랑한다.
구리빛 얼굴이 웃는지 우는지는 모르지만 한결같은 심성으로 다가와 주는 그들을 사랑한다.
들녘이나 바다에서 남루해 보일지 모르지만 비굴해 보이지 않는 바람같은 기개에  그들을 사랑한다.
질박하고 거칠지만 사람사는 향기가 풍기는 그들을 사랑한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다~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으로 시작되는 유행가 가사처럼 살을 애는 여명의 축항을 떠나 머나먼 여로에 분별은 얻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던 그리움으로, 유수 같은 세월이 지나고 한 마리 연어가 되어 태반과 요람의 원류를 따라 운명처럼  흘러들 줄이야 누가 알았던고!

바람거친 이 밤에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산벚나무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상상을 하며 읽고 얇은 웃음을 머금고 ㅎㅎ
저도 남편도 술을 못 하니 당연 술친구가 없고

친정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술
매일같이 찾아오시던 술친구 친구분들

아주 먼 이야기지만
그런 아부지가 생각나네요.
뿌릴칠 수 없는 술 친구들의 부름
이해가 가네요
오토바이 소리 만 들어도 대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웃음이 절로나와 나도 모르게 나오는 흐흐하며
웃음소리에 남편이 뭐가 그리 재미 있냐며 슬며시
다가오네요.

심심하던차에
산벚님의 글을 잼나게 읽었습니다.
남은 시간도 행복하세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한밤중에 전망대까지 피하시다니
피신도 참 다양도 합니다 ㅎㅎ
산벚나무님이 얼마나 좋으면 ㅎㅎ
그 후배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산벚나무님 참 잘하셨네요
덕분에 우리가 산벚나무님 글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올해도 건강하시고
고향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오랜만에 빵~터졌어요 ㅎㅎ

<span class="guest">외기러기</span>님의 댓글

외기러기 작성일

도시생활을 은퇴 후 고향에 연어처럼 회귀하여 사시는 소감 잘 들었습니다.^^
연세는 좀 들었어도 화려한 도시 불빛을 희롱하며 얼마든지 만족한 생활이 가능하실텐데 귀향을 선택해
지인들과 억지로 자리 해야하고 애주가 후배와 숨바꼭질 하는 고행을 자초하셨습니다.ㅎㅎ
느끼셨듯 지금의 고향은 많이 변했어요 .옛날 이웃하며 정을 주고받으며 살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차례로 떠나가고
그 빈 공간은 거의 외지인들로 채워지고 있지요 제 살던 동네도 절반이 외지인이 들어와 사는것 같습니다.
주변에 난립한 시멘트 구조물들에 해안매립지 도로확포장등 어딜보나 해상공원은 커녕 더이상 섬이 아닌모습으로 바뀌었지요.
산도 그래요. 예전 산나물로 지천이던 산마다 잡목들로 꽉차 들어가기도 힘든데다 보호종이라 말만하지 소나무들은 덩굴식물이 휘감아
다 죽어감에도 관계당국은 조치는 커녕 손 놓고 있어요.
예전 푸른잔디밭에 드러누워 삘기 찔레순 벗겨 먹으며 소 염소 뜯기던 동산은 그 흔한 산나물조차 나지 않는 비생산적으로 변한 황폐한 산들..
그 어딜 둘러봐도 예전 모습이 아닌 지금의 고향.. 그럼에도 산벚나무님이 귀향 몸을 던져 고향을 지키시는 모습 심히 존경스럽습니다.
오래도록 건강 행복을 기원합니다.

<span class="guest">축깡</span>님의 댓글

축깡 작성일

주당 후배가 이 글 보고 크게 웃었겠군요.
집에 없으면 오랑 대밭부터 산쪽 전망대 찾아와라
행선지를 일러 준 셈이니..
이제 다른 숨을곳을 개발해야겠어요. ^^
미리 생각해 두시는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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