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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중학교

최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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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정순 조회 3,068회 작성일 07-01-2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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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어릴적 우리동네에 최약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명의라고 소문이 자자해서
다도해 일대에서는 질병이 생기면 최약사님께로 보내어 졌다
우리동네에서는 최약국으로 통했었는데
최약국 한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환자를 수용할 공간이 협소해 지면서
이웃집을 빌려서 잠시 머물다간 환자들이 많았었다.


우리 할머니께서도 환자가 와서 사정 얘기를 하시면
선듯 아래채 방한칸을 내주셨다
여름에는 화로를 걸어서 밥을 지어먹고
곤로를 사용했던 환자가족도 있었던것 같은데
치료을 받고 회복하여 집으로 돌아가면
그 보다 좋을일이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때때로 있었는데 ,
그런날은 참 슬프고 우울한 날이 연속 이였었다.
어느날 최약사님은 분무골로 이사를 가셨고
더이상 우리동네에서는 환자를 볼수 없었다.


내가 일곱살 되던해에 최약사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막내삼촌과 큰언니가 초등학교에 등교를 하면
난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귀찮아진 삼촌은
좋은말로 ,때로는 공갈협박으로, 때로는 감언이설로
나를 떼 내어 볼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삼촌뒤릴 졸졸 따라 다녔다고 한다 .
언니한테는 가지 않으면서 삼촌만 따라다니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리고 막내삼촌은 개구장이라서 놀기를 좋아 했는데
어린조카가를 봐줄려고 하니 잘 데리고 다니다 가도
맘대로 놀지도 못하면, 짜증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날 아침부터 막내삼촌과 난 실갱이를 했다고 한다
데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삼촌과 무작정 따라 나서는 조카,....
기여코 울면서 초등학교 까지 따라가서
교실뒤에서 징징 거리며 울었나 보다
참다 못한 삼촌은 화가나서, 한대 때린다고 때린게 그만..
옆구리를 맞았고 어린조카는 얼마 못가
고열과 함께 혼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난, 그때부터 할머니의 등에 업혀
하루에 두번씩 최약사님을 방문했고
한번 방문 할때마다 주사를 두대씩, 합이 네대를
달포동안 맞아야 했다
고열에 시달리다, 주사 맞은 엉덩이가 아파서
반듯이 누워 있지도 , 앉아있지도 못하고
날마다 방바닦에 옆드려 있어야 했다
겨울이였는데, 하얀 쌀밥에 게다리 얹어주면
누워서 겨우 받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진료를 받던 어느날
최약사님께서 이제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시며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한다고 말씀 하시면서
옆구리에 복수를 빼내야 살수 있다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최약사님의 진료방에서 벌벌 떨었었다
일백cc 주사대에 왕바늘을 꽂아서
사지를 잡고 복수를 빼내기 시작하는데.......
아~~~~~~다시는 하고싶지 않은 방법이다
복수를 빼내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최약국 한옥집을 뺑뺑이를 쳤다, 주사 맞지 않는다고...
최약사님과 할머니는 나를 잡을려고 쫒아다니고...
겨우 붙잡혀서 주사를 맞는데
발버둥 치며 악악 거렸었다
얼마나 할머니를 껴안고 있었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었다
피고름이 늑막에 차서 걷지도, 앉지도 못했고
숨이 차서 호흡하기가 곤란 했었다
항생제로 지탱했던 생명이
세균으로 자칫잘못 했으면 이세상 사람이 아닐뻔 했던
작은 아이를, 최약사님은 의술로 살려주셨다.

그 후론 막내삼촌은 무조건 내편이 되어서
업어주기도 했고 힘든일이 생기면 도와 주었고,
바람막이가 기꺼이 되어 주셨다
아궁이에 불이 잘 지펴지지 않아 짜증을 내며 울고 있으면
언제 왔는지 부지갱이를 들고 불을 활활 지펴놓고
물동이를 이고 출렁거리며 흘러버리면 ,물동이 들어주고
마당쓸면, 마당 쓸어주고
동생들 돌봐주다 낑낑대면 , 동생들을 내대신 업어주기도 하고
솔고지에 올라가면 같이 길동무 해주고
내가 힘들어 하면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잘해주시던
막내삼촌은 불혹의 나이에 나보다 더 빨리 하늘나라에 가셨다
할머니이겐 개구쟁이 말썽쟁이 셨는데...
두분이 천국에서 만나셨겠지...
오늘밤엔 , 할머니도 삼촌도 보고싶다...





Dust_the_wind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선배언니</span>님의 댓글

선배언니 작성일

정말 오늘밤엔 모든이들이 보고픈 밤이네요...
후배님께서 올려놓은 추억을 잃고있으니 말이요...
그냥 소주한잔에 모든걸 털어놓을수있는 친구가 그리운 밤이네요.....

<span class="guest">장정순</span>님의 댓글

장정순 작성일

오늘은 월차를 내서 다정한 친구와 산엘 갔다 왔네요
지난번에 내린 잔설이 차디찬 겨울의 운치를 더해 주더군요.

여유가 없다, 없다 했었는데
이렇게라고 시간을 갖어 보니 참으로 좋네요
함께 동행해준 친구가 고마웠고
소박한 나물밥과 300원짜리 자판 커피,
친구가 집에서 가져온 귤이 전부였지만
소중하고 다정한 친구와 함께한 자리였기에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어요.

친구도 나도..
" 참, 좋다" 라고 말했네요
올한해, 세번만 이렇게 산에 오자고 했네요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신록이 푸르른 여름에
단풍이 곱게 물들 가을에.....

<span class="guest">김순예</span>님의 댓글

김순예 작성일

친구야 ^^ 매번 느끼지만 글을 볼때마다
어쩜 이렇게 생생토크로 잘도 들려주는지 ㅋㅋㅋ
공감이 빡빡 간다..너 그리 아픈 시절도 있었나 ??
((맞다 아마도 소시적엔 한번쯤 다 아파 보았을끼다.....))
참 그리운 사람들이 영상처럼 지나간다 보고잡고 ㅎㅎㅎ

<span class="guest">장정순</span>님의 댓글

장정순 작성일

그때, 그시절에는
홍역이나 전염병, 혹은 파상풍으로 아까운 생명을 잃은 경우가 많았지.
이렇게나마 살아서 숨쉬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니..
사랑하는 친구야, 아름다운 추억 많이 꺼내서 행복 하그레이~~

<span class="guest">언니야</span>님의 댓글

언니야 작성일

언니도 그때 그시절에 징허게 아파서 열흘동안 결석한적이 있소...
그때 열흘동안 먹었던 흰죽(쌀로끓인죽)하고 김은 아직도 안먹는다요...
하도 질러서 말이요....

<span class="guest">짱가</span>님의 댓글

짱가 작성일

난 학교 입학하기전 철이 들락말락 할적이었는데
최약국이 수니집 근처로 옮기기전에 불무골(고 김광조 아랫채 쯤)에서 진료를 볼때였지.
모하동 뉫머리 삼춘(5촌)이 어디가 아팠는지 매일 주사를 맞으러 다니면서 나를 데리고 다녔어
이윤인즉 새끼손가락 만한 크기의 유리병 주사약(영양제???)을 용량이 많아서인지 맞고나면 1/4정도 남았는데
아까버서 나머지 주사약 소비자(?)로 나를 대동하고 다녔던거야
각박한 세상에 아직까진 목숨 부지하고 살고 있음이 그 주사약 덕분인지 ....ㅋㅋㅋ

<span class="guest">장정순</span>님의 댓글

장정순 작성일

짱가야 나도 거기로 치료 받으로 다녔지..
너도 최약국님의 단골 고객이였구나
그때의 영양수액이 지금까지 효과가 있을까나?.....ㅋㅋ
그 덕인지, 이 덕인지...
건강하게 잘 살어라....

<span class="guest">하니</span>님의 댓글

하니 작성일

그럼 그때 그 최약국집이 대단했지??
그런데 그 집이 진짜였었나...
아프면 그리로 다 다녔으니까...
치통, 두통, 어지러움등등
그당시는 다들 그렇게 살았지??
지금 지나고나니 참 그런시절도 있었구려???
재미난글 ㄳㄳ

<span class="guest">장정순</span>님의 댓글

장정순 작성일

하니님은 바빴나 봐...
그럼 , 최약국이 대단했었지..
금오도 뿐만이 아니라 소문듣고, 많이들 왔으니까?
그래서 목숨 부지하는 삶들 많어...

<span class="guest">S</span>님의 댓글

S 작성일

정순이 누나가 그렇게 아픈적이 있었다는 것 이제야 알았읍니다.
건강하시고,,,
최약국 참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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