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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중학교

20년만의 동창회/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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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희 조회 331회 작성일 03-03-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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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저는 이 글을 쓰려고 여러 시간 동안 제 마음을 갈무리 해야 했습니다. 저의 어설픔으로 하여 그 때의 감동들이 행여 압축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이지요.그렇지만 기억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랠 것이고 잊혀지기 쉽 상 이여서 누군가가 현상하여 앨범에 끼워 두지 않으면 조각 조각 흩어질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총 동창 모임을 추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성공 여부를 가늠하지 못했지요.전국으로 흩어진 친구들이 1박2일을 투자해야 가능한 먼 거리였으니 말입니다.그런데 제 예상관 상관없이 동창생 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전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은 빠른 속도로 그 날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그럴수록 마음은 설레어서 무슨 일에도 쉽게 집중할 수가 없었지요.그 와중에 모임을 추진하던 친구가 내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축시를 부탁해 왔습니다.딱히 어울릴 만한 글을 찾지 못한 체 분주한 일상을 보내다가 서투른 제 마음을 쓰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모임의 날은 열리고 간밤에 거의 잠을 못잔 저는 친구 도움으로 인천에 사는 친구들과 여수로 내달릴 수 있었습니다.

일찍 출발 한 덕에 휴게소에 들러 늦은 아침을 먹고 한가롭게 커피도 마실 수 있었었지요.사방은 흐려 있었지만 포근한 기온 이였고 잠을 청하기 위해 차장 밖 빗방울을 외면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그러나 잠은 오질 않았지요.

다섯 살 박이 아들 녀석이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가라 안기도 했지만,실로 몇 년 만에 맛본 자유인지 소녀처럼 들뜨고 홀 가분한 마음 또한 부정 할 수 없는 노릇 이였습니다.

합승한 친구들은 힘든 세상살이를 살며시 풀어 주었고,내일 예약 손님 받을 걱정을 하는 명희와 친정 동생 결혼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행란이의 이야기만 들어도 친구들이 이 만남을 위해 얼마나 어렵게 나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순천을 지나 여수로 향하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길가를 가리키는 게 아니겠습니까...저 허허로운 들판에 수 많은 차량의 소음과,매연과,추위를 이겨내고 봄 소식을 전하러 온 벚꽃 이였습니다.그 동안 여러 매체에서 봄 소식을 듣긴 했으나 이렇게 직접 꽃과 마주하니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지요.마른 잡초 덤불 사이에도 꿈틀대는 생명의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향기롭고 풍요로운지 제 마음의 행복은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여수 땅에 도착하니 아직도 3시간 30분 이나 남아 있었고 일행 중 누군가가 돌산 향일암이나 갔다 오자고 제의를 해왔지요.일출이 장관이라는 그 곳을 아직도 가보지 못한 저는 내심 반가운 마음에 쉽게 동의를 했습니다.



돌산 대교를 지날 때만 해도 흐릿한 날씨에 그다지 넓은 시야를 기대하지 않았지요. 가로수로 심어 둔 동백나무는 붉은 빛이 한창 이였고,푸른 빛이 완연한 보리밭에 내 넋은 한참 머물렀습니다.바다와 섬,육지 그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돌산 도로 주변은 자신들의 멋진 풍경을 아낌없이 펼쳐 주고 있었지요.



향일암 주변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차량을 발견 할 수 있었고,암자까지 10분이 소요된다는 말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엉망인 컨디션과 게으른 운동 덕에 가파른 입구는 나의 호흡을 정지하려는 듯 조여 왔고,설상가상으로 내 바지는 간밤의 비가 합세한 황토 물에 무참하게 얼룩이 지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층층이 돌계단이 듬성듬성 나누어진 평지에 오르자 흰 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목격 할 수 있었지요..구름은 나의 먼 출발지를 알았던지 기꺼이 하늘과 바다를 비켜 주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가만가만 들어있는 작은 돌탑 무리를 지나 암자까지 올라서서 옥 빛과 쪽빛을 두루 갖춘 봄 바다를 볼 수 있었지요.해풍에 매일 목욕을 한 동백꽃의 청순한 미소와 멋진 풍경에 내 넋은 매료 되어 해질녘까지 그 곳에 있고 싶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인내심이 실력발휘를 한 하산 길은 우리의 평범한 진리를 무참히 짓밟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고,급기야 약속시간을 훨씬 넘기고야 말았지요.

여수시의원님과 선배님의 기다림에 속타는 친구들의 전화가 빗발쳤지만,막히는 도로 앞에는 속수무책 이였습니다.

파티랜드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한 후배가 허겁지겁 도착한 나를 반겨 주었지만 금방 헤어져야 했지요.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고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추진 원 들의 환한 마중을 뒤로 하고 식장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사회자가 개회선언을 시작했고,한 친구가 살그머니 다가와 달아준 이름표를 보고 세심함에 내심 놀랐었습니다.이어 국민의례,묵념,동문소개가 진행되고 있었고 식순을 담당한 친구가 여수시의원님의 격려사 다음이 내 차례라 일러주었지요.시간이 촉박하여 많이 당황했지만 다행이 의원님의 긴 말씀에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 하여 무사히 내 차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동창회는 지금부터 시작 이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참석한 그들 무대 뒤로 학창시절 단체사진 속에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늘...)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고,조명, 밴드까지 다양하게도 준비되어 있었지요.반가운 친구들의 순간 포착을 놓칠세라 한 친구는 연신 셔터를 누고 있었고,비디오 카메라맨은 환한 조명을 불사르며 친구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습니다.부페식으로 마련된 만찬은 그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지요.



20년만의 그들의 변화된 모습 속에 학창시절 해맑은 표정은 그대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얼굴과 이름을 매치시켜 가며 옛 친구의 얼굴을 찾아 낼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지요.



폭발할 듯 품어 나온 그들의 끼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되었나 봅니다.모두 한 마음이 되여 친구여 라는 노래를 합창할 때 부풀어 오르던 벅찬 감동은 지금도 제 가슴에 메아리되어 돌아와 줍니다.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참석하기 전까지 망설였던 자신을 후회하며 한 껏 들떠 했었지요.



여수의 밤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밤을 보내기가 얼마나 아깝고 아쉬웠는지 그 자리에 있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학창 시절 그렇게 얌전하던 친구가 과감히 탈피한 제 모습을 보여 줄 때 얼마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친구들의 걱정을 무색 케 하던 그들 음주문화는 얼마나 성숙됐는지...



선, 후배,동창생들의 넉넉한 찬조와 기부금으로 하여 400여 만 원 이라는 거금이 소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았다니 정말 고맙고 대단한 일이지요.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도 간간이 집 생각을 했고 자식 생각, 남편 생각을 했습니다.아마 지금쯤 따뜻한 가정에서 마음 푹 놓고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며 얼마나 흡족해 할까요...아직도 아쉬운 것은 그 자리에서 볼 수 없었던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이 있습니다.그 행복을 잠시라도 느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언제든 나설 필요가 있겠지요.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가까운 사람들의 양보와 믿음과 사랑이 따라야 하겠고. 그러면서 얻을 수 있는 따뜻한 내조와 신뢰가 삶의 질을 한층 높여 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힘든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이 한편의 드라마는 제 가슴에 촉촉한 여운으로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글.편집/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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