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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거기서 자살 안 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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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승훈 조회 384회 작성일 05-03-1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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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거기서 자살 안 할 거죠?)

어제 부산에 폭설이 왔다고 합니다. 100년간의 기록을 깨는 엄청난 폭설에 차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도로와 눈사람을 만들며 뛰노는 아이들 모습이 TV화면에서 교차합니다.
봄을 맞는 3월초인데도 요 며칠 동안 눈발이 휘날리고 춥고 우울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오늘 드디어 화창한 봄날입니다.

한 조각의 햇볕이라도 더 들어오라고 철창밖에 널어 말리는 행주조차 실내 빨랫줄로 옮겼습니다.
지난겨울 햇살에 주린 수인(囚人)들은 창가에 기대 교도소 밖 솔숲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부러워합니다.
마침 오늘(월요일)은 격주로 모포를 터는 날입니다. 오전에 볕 좋은 빨래 건조장에 한 달 동안 털지 못해 먼지가 폴폴 나는 모포를 널었습니다. 교도소 감방생활은 먼지와의 싸움입니다. 특히 겨울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철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한 줄기에 어두컴컴한 실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먼지가 포착됩니다. 옷가지 등에서 발생하는 섬유먼지, 수없이 이방을 걸쳐간 사람들이 남기고간 몸의 각질과 체취가 모포에 묻어있습니다. 그래서 방 사람들은 이불을 펴고 갤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씁니다.

2주전 모포 터는 날은 하필 비가 오는 바람에 못 털어 한 달 동안에 털게 되었습니다. 오후2시 쯤 모두 나가 공중으로 모포 천을 리드미컬하게 들어 올렸다가 힘차게 내려치면 ‘팡 팡’ 소리가 납니다.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먼지가 폭탄 터지듯 공중으로 분해됩니다.
절망스러웠던 항소심 기각 판결, 회사의 인권유린 소식, 조합소식, 해고소식, 목덜미와 소매 사이로 무섭게 스며드는 추위 등등...... 지난겨울 힘든 일들을 따사로운 봄 공기에 털어 버렸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팡 팡’ 털어 냈습니다.

오후 4시경, 기다리는 편지 받는 시간입니다.
제 아들놈인 상하한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편지에는 11살짜리 동심이 봄볕처럼 가득 들어 있습니다. 자신이 ‘컴퓨터 중독자’ 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빠져 나오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마음과 달리 몸은 ‘계속 계속 컴퓨터 방으로 가고 있다’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마 요즘 제 엄마한테 게임시간 때문에 소리를 많이 듣고 있나 봅니다. 머지않아 돌아오는 ‘할아버지 제사’를 챙기면서 아빠보고 ‘마음이나마 꼭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라’고 충고 하는 대목에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제일 압권은 최근 우울증으로(?) 자살한 여배우를 들먹이면서 “이러니까 점점 불안해져요. 아빠, 거기서 자살 안 할 거죠?” 라는 대목입니다. 하도 ‘재양스러워’ 방 사람들과 편지를 돌려 읽으며 웃었습니다.

문득, 어린 아들놈이 벌써 이렇게 커서 아빠가 겪는 고난을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런 아들놈에게 아빠 노릇을 2년간 유예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 아들놈 상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는 누구보다 건강히, 열심히 잘 지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절망과 우울증(?)보다는 앞으로 다 잘 될 거라는 낙관과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입니다. 무료한 기다림이 아닌 엄격하고 충실한 나날로 이 고난의 시간을 기꺼이 헤쳐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가 겪은 이 고난이 훗날 아들놈이 자라면서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헤쳐 나갈 수 있는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래서 지금 고난 때문에 두 아들놈들과 손잡고 목욕탕에 갈 그날은 더욱 행복할 것 아닙니까?

단, 지금 제 아들놈과 제가 겪고 있는, 아니 지금 가족들과 생이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곱 명 동지들의 옥살이로 인해 현재 회사가 이루고자 하는 ‘파업을 기회로 한 민주노조 죽이기’가 끝내 성공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강제 사직자를 포함한 30여명의 해고로 인해, 또한 인권유린까지 동반한 노조 길들이기로 인해 잠시 풀잎처럼 들어 누울 수는 있지만 그 뿌리까지 뽑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지극히 이기적인 노동조합 (회사 측 표현대로라면 합리적 노사관계)을 강요할 것입니다. 고용 축소를 수락하고,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지역사회를 외면하고, 이 땅 노동자로서 마땅히 져야할 사회 개혁적 책임을 외면하고 소수 정규직 위주의, 회사에 의해 길들여진 이기적 노동조합으로 남으라고 회유할 것입니다. 그런 조건으로 회사는 당근을 적절히 투여할지 모릅니다.

2004년 여름 파업은 이런 회사의 길들임을 거부한 투쟁이었습니다. 독약 같은 당근을 포기하는 대신 노동자로서 사회적 양심과 책임을 저버리지 못해 고난의 투쟁을 택한 것입니다.
무자비한 인권유린 후 숨죽인 듯 엎드려 있는 동지들의 가슴속에는 그 뜨거웠던 지난여름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작년 8월 6일 저녁 경찰 수배를 피해 대학교 뒷산으로 피신하던 시간, 단국대 캠퍼스 운동장에서 울부짖듯 울러 퍼지던 조합원들의 ‘파업가’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 갇혀서도 희망을 잃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동지들의 건강과 투쟁을 빕니다.

2005년 3월 7일
목포교도소에서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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