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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사투나잇과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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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승훈 조회 443회 작성일 05-03-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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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시사투나잇과 해고 )

점심때 두부 김치를 먹었습니다.
이곳 목포 교도소에서 나오는 반찬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1/4모짜리 생두부에다 돼지고기 씀벅씀벅 썰어 넣어 졸인 '묵인 김치 졸임' 을 곁들어 먹는데 잘 익은 묵은 김치의 감칠맛이 찬두부의 담백함과 잘 어울려 밥이 그냥 넘어 갑니다.

어제 점심땐가는 동배추(이곳 목포 사람들은 '봄동' 이라고 합니다.) 겉절이를 먹었는데 옛날 어머니께서 고소한 젓국과 갖은 양념에 버물려 만든 것에 어찌 비하겠습니까만, 이곳에 다가오고 있는 봄기운을 느낄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순천, 광주, 그리고 이곳 목포 교도소까지 거치면서 나름대로 밥반찬 품평을 한다면 여기 목포가 제일 낫습니다.
글쎄...이지역 겨울 들판에 한참 시퍼렇게 자라고 있는 풋마늘 잎대와 김가루를 양념장에 무친 '풋마늘 김무침' 이 다 나오다니......

어느 조리장의 음식 센스로 인해 이곳이 교도소라는 느낌을 잠시 잊게 해 줍니다. 미끄러운 올챙이가 입안에서 장난을 치는 듯한 느낌의 '수제비' 또한 제가 일주일을 기다리는 요리입니다.

아직 고쳐야 할것 너무 많은 이곳이지만 과거 '콩밥' 만 생각하고 있는 사회의 인식을 깨우칠 멋진 식단도 있다는 것 알려 드립니다. 이제 콩밥은 사라지고 쌀과 보리 비율이 7:3정도의 짬밥으로 바뀌었습니다. 먹을게 부족해 늘 배고팠다는 과거에 비해 이제는 갇혀 지내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현상마저 있고 누구나 예외없이 비만과 변비에 시달리고 있어 문제라고 합니다.

구속전 73kg까지 내려 갔던 제 몸무게가 지금은 79kg까지 올랐습니다.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시간에 쉬지않고 달려도 이렇습니다. 교정 당국이 하루 30분에 불과한 운동시간을 1시간으로 늘리면 비만과 변비 등 운동 부족으로 생기는 건강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터 인데요. 한 집안의 수준을 화장실에서 찾고 한 국가의 수준을 교도소에서 찾는다고 했는데, 이곳 또한 정확하게 우리사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그저께 김홍주, 이병만 동지가 추가로 해고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만 동지의 경우 'KBS 시사 투나잇'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해 회사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할 말을 잃게 합니다.
지금 GS로 새출발하는 회사의 전략은 겉으론 노조를 내세워 '합리적 노사관계' 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노조' 를 지향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해고와 갖은 협박으로 노조를 길들이고 노조 그 본래의 기능을 빼앗아 도장을 빌려주는 '총무팀 후생담당' 기능으로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굳이 노조에 대해 '합리적이다, 투쟁적이다' 라는 식의 시시비비를 떠나서 기업으로서 최소한 갖춰야 할 도덕성 마저 팽개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최근 회사의 행보를 보면 소위 '합리적 노사관계' 가 얼마나 부도덕하고 반 인권적인 토대위에 세워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렇게 세운 '합리적 노사관계' 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무한 이윤추구의 종점이 어딘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조합 방해없이 구조조정을 강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방해없이 소수 GS자본과 외국 석유 메이저 주주들에게만 기업에서 생긴 이윤을 빼 돌리겠다는 것입니다.

며칠전에 'LG(GS)정유 인권 탄압 진상 보고서' 라는 민주 노동당에서 펴낸 책자가 도착했습니다. 책자 102쪽을 보면 회사에서 표본으로 작성한 '반성문' 모범답안(?)이 실려 있습니다. 회사가 모범답안을 제시하면서 그 내용에 맞는 반성문과 서약서를 강요한 증거가 드러난 것입니다.

직접 겪어 다 아실 내용이지만 '반성문(서약서) 모범답안' 몇가지 주요 내용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불법 파업으로 인해 내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노총 이라는 상부단체의 정치 목적에 하수인으로 철저히 이용 당했고 물
론 저도 똘마니로 무조건 따른 것은 잘못입니다.

-해고자 복직 집회는 참석않겠습니다.

-조합이 내리는 지침은 이제 따르지 않겠습니다.(해고자 구제 서명 사인지
등......)

-산별노조 전환은 반대합니다.

-우리의 자주성과 독자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상급단체(민주
노총) 변경을 조합에 적극적으로 권유하겠습니다.

이상이 회사에 의해 만들어진 A-4 용지 3쪽으로 된 반성문 모범답안 중 일부 주요 내용입니다.

이책자에는 위의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조합원의 '반성문' 과 '나의각오' 등도 다수 실려 있습니다. 이 글들은 회사 온라인 게시판에 실명 공개 되어 올라온 것 들입니다.
양심과 소신에 반하는 강요된 반성문을 사내 게시판에 실명으로 싣게 하여 수치심과 패배의식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 인권탄압이자 양심에 따른 행동의 자유라는 천부적 권리마저 짓밟는 폭거입니다. 다시는 남 앞에서 민주노조 활동에 참여 할 수 없도록 명예를 박탈하는 야비한 방법입니다.

저는 해고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심과 소신 보다는 반성문을 택해 회사 온라인 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린 알만한 어느 선배님의 글도 읽었습니다. 회사의 가혹한 힘에 눌려 '전향서' 를 써야 했던 수 많은 조합원의 아픔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저는 파업의 옳고 그름, 노조 방향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벗어나 과연 회사의 이러한 방법들이 21세기 대명천지,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의 유수 대기업이라는 GS(주)가 취해야 할 옳은 방법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대한민국 정부가 용인하고 있다고 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위험한 나라입니다.

조합원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상급단체 변경 문제에 대해 왜 회사가 반성문 모범답안을 만들어 민노총 탈퇴를 강요해야 합니까?
조합원이 선택해야 할 산별노조 전환을 왜 회사가 반성문 모범답안을 통해 못하게 합니까?
이런 회사의 행위를 용인하는 노동부... 정말 이 나라는 우리가 살아가기에는 법도 도덕도 없는 무서운 나라입니까?

이 책자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파업때 '공장 가동 정지의 책임' 을 노조에 돌리기 위해 회사가 중질유 분해공장(RFCC)의 메인 전력 스위치를 내리고는 노조가 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의혹은 꼭 밝혀져야 합니다. 이 진실이 밝혀지면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파업을 유도 했다는 회사의 도덕적 추악성이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런 기업이 만든 휘발유가 아무리 좋은 품질이다 한들 많은 양심적 시민들에 의해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벌어들이는 이윤이 아무리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한들 그 기업은 '공공의 적' 일 뿐 입니다.

파업 지도부도 아닌 일개 조합원을 'KBS 시사 투나잇' 방송프로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로 해고 했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일 것입니다. 이병만 동지가 이후 민주노조를 '이끌수도' 있는 생존한 '싹' 이었기에 해고 한 것일 겁니다.

4.5평 철창에 갇혀 기가 막힌 소식을 듣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2년을 차분히 버티어 나가야 할 몸인데도 이런 소식은 새벽잠을 설치게 합니다.

이제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자본의 힘이 법과 정의, 양심과 올바른 가치들 마저도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엄동설한의 시대입니다.
여기에 맞서는 해고자 동지들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결국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봄은 희망입니다. 저 또한 철창사이로 따스하게 스며드는 봄을 희망으로 맞을 것입니다.

동지들의 건강과 힘찬 투쟁을 빕니다.

2005년 2월 25일
목포교도소에서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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