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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중학교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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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승훈 조회 378회 작성일 05-03-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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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완연한 봄입니다.
교도소 담장 너머 솔숲 언덕아래 대나무 숲이 미풍에도 예민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대나무 숲은 바람이 얼마나 불고 있는지 알려주는 풍속계입니다. 교도소 감방은 복도식 아파트 구조로 되어있고 겨울철에는 난방 효율상 복도 쪽 창문을 열어 두어도 바람이 맞통하지 않아 바람 등 바깥 날씨에 둔감합니다. 그래서 3층 감방, 좁은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건너편 솔숲과 대나무 숲은 계절 변화를 알려주는 좋은 친구이자 갇힌자 들의 마음 같습니다.
흰 눈을 이고 꽁꽁 얼어있던 언덕이 이제 봄볕을 받아 생기가 넘쳐흐릅니다. 때론 봄비와 안개에 쌓여 수묵화처럼 검게 가라앉기도 하고 오늘처럼 봄바람에 경쾌하게 몸을 흔들기도 합니다.

신문을 보니 섬진강가 매화 마을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고 난립니다. 딱 작년 이맘때 식구들과 이곳에 매화 보러 갔었는데 길가에 펼쳐진 매화 밭을 보느라 한 눈을 팔았더니 집사람은 “앞만 보고 운전하라”며 성화였고 오랜만의 가족외출에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좋아했습니다. 두엄냄새 그윽한 하얀 매화나무숲을 지나 어느 TV드라마의 배경이었다는 어른 종아리 두께의 통대나무숲을 걸어 돌아오는 2km 남짓한 산책길은 정말 좋았습니다.
이렇게 갇혀 신문화보속의 매화를 보는 것만으로 봄을 맞아야 하는 마음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최근 단체협약 갱신을 즈음해 회사가 노조에 회사 쪽 요구안을 들이대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일반적으로 단협 개정은 노동조합이 요구하고 회사가 부응하는 식이었습니다. 회사 쪽 요구안의 핵심은 단체협약의 ‘고용안정 조항’과 ‘인사 경영 조항’ ‘조합 활동 조항’ 중 2000년 이후 노조가 확보한 내용들을 없었던 것으로 돌려 달라는 것이라 합니다. 이 들 조항은 쟁취 과정 또한 쉽지 않았고 완벽하게 흡족하지 않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순이익 규모(2002년 2,850억 → 2003년 3,875억 → 2004년 8,500억)와 반비례하여 틈만 나면 공장 인원을 줄여 나가는 회사의 의도를 저지하는 마지노선으로 작용한, 2000년을 깃 점으로 쟁취한 단협 들입니다. 회사의 뻔한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 요구입니다. 회사 즉, GS-CALTEX가 말하는 ‘공용인원을 줄여’ 경영을 합리화 한다는 것은 기실 미국의 석유자본 세브론 텍사코 (50% 주주)와 GS 허씨 자본(50%)즉, 소수 주주에게 줄 이익금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 단지 그것뿐입니다.(2003년 주주 배당률 98%를 상기하십시오.)

그간 노동조합이 고용을 지켜내는 악착같은 투쟁에 그치지 않고 고용을 늘리라고 요구한 2004년 파업 투쟁의 본질은 충분한 지급여력이 있는 기업으로 하여금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회적 책임을 다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청년 실업과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비정규직 고용이 판치는 현재 경제구조에서 우리의 투쟁은 지역 사회와 국가 사회에 기여하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월간 ‘말’지 2월호에도 공개 되었지만 99년 10월 4일 허동수 회장에게 보고된 RMIP 중간보고서 120쪽에는 “공장 전체 인력의 15~20%, 기능 감독직의 15%, 기능직의 20~30% 절감이 가능한 것으로 예상” 이라는 목표치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공장 고졸 기능직을 1,000명으로 잡을 경우 200~300명을 어떠한 형태로든 ‘절감’ 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합리적 노사관계’라는 회사가 강요한 노사 관을 수용하고, ‘자기만 잘리지 않는다면’ 이라는 기회주의적, 각개 생존 식 처신에 사로잡힌 경우라면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노동자로서 일말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조합원들이라면 비록 자기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부당한 ‘절감’입니다. 만인이 1인을 위해 싸우고 1인은 만인을 위해 싸우는 것이 노동조합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노조 핵심 간부 7명을 3년에서 2년 6개월 동안 감옥에 가두어 두고, 30여명의 활동적인 간부, 조합원을 해고해 공장 밖으로 내몰아 놓고, 인권 유린까지 하면서 현장을 초토화 한 회사가, 지금 노조에 요구하는 것은 구조조정에 방해되는 법적 근거가 될 단협 조항을 없애 달라는 것일 겁니다.
실제 위의 RMIP 중간보고서 120쪽에는 “공장 전체 인력 15~20% 절감 가능하지만 제약 조건은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 이라고 되어있어 노조만 무력화 시키면((즉, 동의를 받아 낼 수 있다면)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구속자 재판 대법원 ‘상고심 변호인단 상고 이유서’에 따르면 회사가 파업을 유도하여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함정 파업”의 의혹을 제기 하고 있는 것도 이 보고서에서 근거합니다.
말로는 “국가기간 산업”이니 “필수공익 사업”이니 하면서 노동쟁의 관련하여 특혜만 누릴 뿐이지 사실은 전혀 ‘공익적이지 못한’ 아니 특정 소수 주주만을 위한 ‘필수 사익 사업장’으로 GS-CALTEX가 전락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위의 월간 ‘말’지에 따르면 ‘과연 누가 공공의 적인가?’라고 묻고 있을 정도이니 향후 우리 조합원들의 역할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불의와 비도덕적인 폭력에 잠깐 진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80년 5월 광주,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총칼에 쓰러지고 몸을 낮춘 광주 시민들을 아무도 ‘패배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KBS시사 투나잇 에서도 방영 되었지만 해고와 구속, 인권유린까지 동반한 탄압의 매는 광주의 총칼처럼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찾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려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 우리의 파업투쟁은 너무나 정당 했기에 결코 영원히 패배로 남을 수 없습니다. 기아차 비리, 항운 노조 비리 등, 사용자들의 독약 든 당근을 먹는 기업별 이기적 노동 운동 때문에 전체 노동 운동의 위기라고 호들갑 떨고 있는 이때 한국의 노동조합이 가야할 방향을 온몸으로 가리킨 투쟁이 우리의 작년 여름 투쟁이었습니다.

매화꽃 피는 좋은 봄에 동지들의 투쟁과 건강을 빕니다.

2005년 3월 18일
목포교도소에서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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