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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중학교

20년만의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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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십오회 조회 881회 작성일 03-03-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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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쓰려고 여러 시간 동안 제 마음을 갈무리해야 했습니다.
저의 어설픔으로 하여 그 때의 감동들이 행여 압축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지요.

그렇지만 기억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랠것이고 잊혀지기 쉽 상 이여서 누군가가 현상하여 앨범에 끼워 두지 않으면 조각조각 흩어질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총 동창 모임을 추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성공 여부를 가늠하지 못했지요. 전국으로 흩어진 친구들이 1박2일을 투자해야 가능한 먼 거리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는 상관없이 동창생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전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은 빠른 속도로 그 날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그럴수록 제 마음 또한 설레어서 무슨 일에도 쉽게 집중할 수가 없었지요.

드디어 모임의 날은 열리고 간밤에 거의 잠을 못잔 저는 친구 도움으로 인천에 사는 친구들과 여수로 내달릴 수 있었습니다. 일찍 출발 한 덕에 휴게소에 들러 늦은 아침을 먹고 한가롭게 커피도 마실 수 있었었지요.

다섯 살 박이 아들 녀석이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가라 안기도 했지만, 실로 몇 년 만에 맛본 자유인지 소녀처럼 들뜨고 홀가분한 마음 또한 부정 할 수 없는 노릇 이였습니다.

합승한 친구들은 힘든 세상살이를 살며시 풀어 주었고, 뒷날 예약 손님 받을 걱정을 하는 명희와 친정 동생 결혼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행란이의 이야기만 들어도 친구들이 이 만남을 위해 얼마나 어렵게 나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순천을 지나 여수로 향하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길가를 가리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 허허로운 들판에 수많은 차량의 소음과, 매연과, 추위를 이겨내고 봄소식을 전하러 온 매화꽃 이였습니다.

그 동안 여러 매체에서 봄소식을 듣긴 했으나 이렇게 직접 꽃과 마주하니 제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지요. 마른 잡초 덤불 사이에도 꿈틀대는 생명의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향기롭고 풍요로운지 제 마음의 행복은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여수 땅에 도착하니 아직도 3시간 30분이나 남아 있었고, 일행 중 누군가가 돌산 향일암이나 갔다 오자고 제의를 해왔지요. 일출이 장관이라는 그 곳을 아직도 가보지 못한 저는 내심 반가운 마음에 쉽게 동의를 했습니다.

돌산 대교를 지날 때만 해도 흐릿한 날씨에 그다지 넓은 시야를 기대하지 않았지요.
가로수로 심어 둔 동백나무는 선홍빛에 물들어 있었고, 푸른빛이 완연한 보리밭에 내 넋은 한참 머물렀습니다.

바다와 섬, 육지 그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돌산 도로 주변은 자신들의 멋진 풍경을 아낌없이 펼쳐 주고 있었지요.

향일암 주변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차량을 발견 할 수 있었고,암자까지 10분이 소요된다는 친구 말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엉망인 컨디션과 게으른 운동 덕에 가파른 입구는 나의 호흡을 정지하려는 듯 조여 왔고, 설상가상으로 내 바지는 간밤의 비가 합세한 황토 물에 무참하게 얼룩이 지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층층이 돌계단이 듬성듬성 나누어진 평지에 오르자 흰 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목격 할 수 있었지요. 구름은 나의 먼 출발지를 알았던지 기꺼이 하늘과 바다를 비켜 주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가만가만 들어있는 작은 돌탑 무리를 지나 암자까지 올라서서 옥빛과 쪽빛을 두루 갖춘 봄 바다를 볼 수 있었지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인내심이 실력발휘를 한 하산 길은 우리의 평범한 진리를 무참히 짓밟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고, 급기야 약속시간을 훨씬 넘기고야 말았지요.

여수시의원님과 선배님의 기다림에 속 타는 친구들의 전화가 빗발쳤지만, 막히는 도로 앞에는 속수무책 이였습니다.

여수 파티랜드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한 후배가 허겁지겁 도착한 나를 반겨 주었지만 금방 헤어져야 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고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추진 원 들의 환한 마중을 뒤로 하고 식장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사회자가 개회선언을 시작했고, 한 친구가 살그머니 다가와 달아준 이름표를 보고 그 세심함에 내심 많이 놀랐습니다.

이어 국민의례, 묵념, 동문소개가 진행되고 있었고 식순을 담당한 친구가 여수시의원님의 격려사 다음이 내 차례라 일러주었지요.

시간이 촉박하여 많이 당황했지만 다행이 의원님의 긴 말씀에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 하여 무사히 제 차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동창회는 지금부터 시작 이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참석한 그들 무대 뒤로 학창시절 단체사진 속에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늘...)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고, 조명, 밴드까지 다양하게도 준비되어 있었지요.

반가운 친구들의 순간 포착을 놓칠세라 한 친구는 연신 셔터를 누고 있었고, 비디오 카메라맨은 환한 조명을 불사르며 친구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뷔페식으로 마련된 우리의 만찬은 그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지요. 20년만의 그들의 변화된 모습 속에 학창시절 해맑은 표정은 그대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켜 가며 옛 친구의 표정을 찾아 낼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지요.

폭발할 듯 품어 나온 그들의 끼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되었나 봅니다.
모두 한 마음이 되여 친구여 라는 노래를 합창할 때 부풀어 오르던 벅찬 감동은 지금도 제 가슴에 메아리 되어 돌아와 줍니다.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참석하기 전까지 망설였던 자신을 후회하며 한껏 들떠 했었지요.

여수의 밤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밤을 보내기가 얼마나 아깝고 아쉬웠는지 그 자리에 있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학창 시절 그렇게 얌전하던 친구가 과감히 탈피한 제 모습을 보여 줄 때 얼마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친구들의 걱정을 무색케 하던 그들 음주문화는 얼마나 성숙됐는지...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도 간간이 집 생각을 했고 자식 생각, 남편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쯤 따뜻한 가정에서 마음 푹 놓고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며 얼마나 흡족해 할까요. 아직도 아쉬운 것은 그 자리에서 볼 수 없었던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이 있습니다.
그 행복을 잠시라도 느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언제든 나설 필요가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가까운 사람들의 양보와 믿음과 사랑이 따라야 하겠고. 그러면서 얻을 수 있는 따뜻한 내조와 신뢰가 삶의 질을 한층 높여 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힘든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이 한편의 드라마는 제 가슴에 촉촉한 여운으로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글/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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