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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비렁길 5>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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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희 조회 1,035회 작성일 24-03-1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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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사연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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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가 깊다 하여 “깊은 개”라고 불리어졌다는 심포는, 바다에서도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태풍마저도 쉽게 다가서질 못하는 까닭에, 해안 경비선은 바다가 위험할 때마다 포구로 급하게 들어와 정박을 한다. 그래서 섬 주민들은 더 이상 가두리 양식장 허가를 낼 수 없는데, 덕분에 심포는 여전히 깨끗한 바다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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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4코스 데크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캠핑 온 노부부가 이제 갓 잡아 올린 대형 감성돔으로 회를 뜨고 있다. 부러운 눈길을 스치며, 심포에 하나밖에 없다는 식당 입구에 서서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식당주인이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인천에서 방금 내려왔다며, 식사 준비를 할 수 없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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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도가 고향이고, 초등학교 선배님인 걸 알게 되었다. 인천에서 식당을 경영하셨던 선배님은, 생선 다루기가 여간 서툰 게 아니어서, 오랜 경험이 있는 육류로 요리 종목을 바꾸셨는데, 오히려 고향 분들의 식당으로 자리매김되었다고 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방풍 막걸리 한 병 받아 들고는 비렁길 5코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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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깊숙이 들어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바다를 향해 걷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도, 내 미지에 대한 기대는 싱그러운 계절을 닮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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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경사진 도로를 따라 오르는데 찔레, 매화, 오리나무, 아이비가 어느새 봄을 올리느라 왁자하고, 오른쪽엔 쓰다 남은 거대 배수관이 세월의 더께를 쌓으며 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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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손수레가 지날 수 있었던 좁은 비포장 길에 반듯한 도로가 놓이고, 그 도로 위에는 흙과 나뭇잎들이 퇴적하여 잡풀의 터가 되었다. 그 틈에서도 냉이는 유별나게 돋보여 지나는 아낙들의 대화 속에 살갑게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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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끄트머리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일종고지는 시선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해방 후 벌목이 금지된 일종고지는 아름드리나무들로 무성했다는데, 낚시꾼들이 어떻게 알고는 밤에 몰래 나무들을 베어 배로 끌고 가는 바람에 심포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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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고지


짜밤(잣밤) 나무가 많아 섬 아이들의 간식을 제공하는 동화의 숲이었던 일종고지는 그늘진 이야기도 많다. 일종고지의 주인이 선주였을 때, 먼 바다까지 정치망 그물을 놓기도 했다는데, 부패된 주검이 그물에 걸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나 법적으로 너무 낙후된 시절이라서 임시로 일종고지 한쪽이 무연고 무덤으로 채워졌는데, 너무 허술하여 주검들은 폭풍우에 휩쓸려 바다로 수장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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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장지를 향하는 모습은 호랑이를 닮고, 오른쪽 마을을 향하는 모습은 거북이를 닮아, 집안에 우환이 깃들 때는 혹시 일종고지가 마을로 들어오는 바다를 막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기도 했단다. 하지만 일종고지는 예나 지금이나  바다 생물들의 최적화된 환경인 까닭에 사람의 발자국이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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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밤(잣밤) 나무와 열매


일종고지를 놓아주고 옛 마을 터, 큰막개에 들어서자마자 우람한 짜밤 나무가 보인다. 막개 마을의 재단 齋壇이었던 이 노거수는 사람들의 염원을 먹고도 어떤 시름도 없이 해마다 제 유전자를 밀어 올리고, 세월의 무게도 무색하게 더욱 싱싱하고 다부지게 지나는 길손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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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막개 마을 터/ 마르지 않았다는 샘엔 음지 식물만


보돌바다에 몸을 풀던 태풍에도 끄떡없던 돌담들이 온기를 잃은 채 녹슬어가고, 한 번도 마른 적 없다던 샘이 저 홀로 늙어가고 있다. 어쩌면 막개 마을은 주소지를 상실한 실향민들 기억에 아련한 향수로 떠돌고, 그나마 단단하게 다져진 길이 지워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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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182fed12af12147e200066565e178_1710472046_3345.jpg은막개 터



돌계단을 따라 아담한 숲길을 지나 작은 막개마을에 이르러, 문득 뒤를 돌아본다. 흔적 없이 사라진 가옥들 너머로 지난 추위에 생명을 잃은 누런 대숲이 보인다. 냉기가 너무 또렷하여 스산한 바람이 내 마음을 관통하는데, 나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척박한 땅을 일구던 온기를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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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알곡을 생산한 축대였을 돌담이 시누대 그늘에 밀려나고,  불쑥 다가선 매화에 호흡을 안으로 끌어당기는데, 세상여를 향해 달려가는 배 한 척이 지루할 틈도 없이 마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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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을 채운 소사나무를 뒤로하고 약간 오르막길에서 하마터면 놓칠 뻔한 길마가지나무 꽃에 머문다. 여린 꽃잎에 남겨둔 바람의 입김을 놓칠 수 없어, 나는 앞서간 걸음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시선을 고정시킨다. 찰칵 찰칵 찰칵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내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걸 알 때는 두고 온 카메라가 후회되고, 막개 전망대를 향해 걸음의 속도를 올리다가도 자꾸만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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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개 전망대 오른쪽 솔숲에 아슬하게 걸친 손죽도, 소거문도, 대암, 소평도, 평도, 구도, 광도, 거문도, 문도, 알마도, 백도, 검등여, 하백도, 납작도 소리도를 손가락으로 쿡쿡 눌러보다가, 한 잔의 방풍 막걸리와 쑥전에 때늦은 끼니를 채운다. 풍경에 취하고 맛에 취해 오래오래 주저앉고 싶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가늠할 수 없어 훌훌 털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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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매트가 깔린 작은 돌밭 길을 지나고 계단으로 오르자, 크고 작은 염원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성지로 거듭난 돌의 나라가 펼쳐진다. 이내 발자국은 숲구지 전망대에서 끊기고 소부도, 녹섬, 부도와 마주 보고 있는 까치섬과 우리 동네 서고지의 환한 표정을 본다. 무수한 돌무더기를 덮으며 몸집을 늘린 마삭줄 영토를 지나고, 더욱 빨라진 걸음은 다시 온다는 약속도 바람도 없이 마지막 데크 계단을 지나 동백 울타리 옆길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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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 쪽 일종고지 해변에서 시작된 원시의 지명, 막게목(심포몽돌밭), 활끝, 땇여, 돌 무너진 자리, 멍개통, 세모통, 대리비치통, 막개해변, 꽃밭등, 문바위, 숫구지, 장지해변으로 이어지는  숱한 사연의 물보라가 아릿한 몽환으로 수면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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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비렁길 5코스의  바깥을 다 보고 들려주시던 한 선배님의 조망에 다가설 수 없었던 아쉬운 마음은, 안도대교 풍경이 열리는 순간, 마치 꾹꾹 눌린 환희가 툭 터져 나온 듯 뭉클한 물결이 출렁인다. 그 한가닥의 포말 속에 저장된 지난한 걸음이 없었다면 만나기 힘든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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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천둥번개가 노닐던 무서운 밤을 보내고 새벽이 오면, 부스스한 잠을 털어내며 비 비린내 나는 새랍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망산을 보고 있노라면 한쪽 귀퉁이 돌들이 자잘하게 부서진 채로 쏟아져 있었다. 그때 나는 엉뚱한 상상에 사로잡혀, 저 돌들을 무너뜨리려고 밤새 그리도 험상궂은소리가 났나 보다고 안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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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지에서 바라본 망산(비렁길 5코스)2023.7.30


내 마음에 머물던 망산의 동화가 너무 밝은 기운에 홀연히 날아간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나는 너무 오랜만에 가슴에 머물던 뜨거운 습이 눈가로 번지는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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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더 담으려고 두리번거리던 호기심이 점점 질기게 풀린다. 기어이 길을 잃는다.


 


 

 

<비렁길 3코스> 기행문 <-바로가기


<비렁길 4코스> 기행문


<비렁길 5코스> 기행문


댓글목록

이종희님의 댓글

이종희 작성일

사진이 안 보일 때는
다시 열면 잘 보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친구수니님, 요산요수님, 미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요산요수(쏨뱅이)님께서 풀어주신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이 글에는 차마 사용하지 못했지만
일종고지 바닷가의 많은 지명에 대한
주옥같은 유례와 사연들은
조만간 따로 올려놓겠습니다.

<span class="guest">요산요수</span>님의 댓글의 댓글

요산요수 작성일

제가 대답해 드린 일쫑고지 지명중 대리비치통과 세모통은
위치가 서로 바뀐것 같고 대리비치통은 마치 통처럼 움푹들어간 통개를 축소해 놓은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또 밭넙데기에 많이 서식하는 굴맹이 얘기도 빠진듯 하고 막개목에 바짝 간조시 해삼이야기도 빠뜨린것 같군요.
짧은순간 생각하다 보니 다 챙기지 못했습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짧은 시간인데도 너무 완변하게 풀어 주셔서
제가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지명이었지만
이 또한 누구나 쉽게 알 수 없는 자료라서
읽는 순간 너무 떨렸습니다.
오늘 너무 바쁜 일이 있어서
이제 귀가 했네요
요산요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span class="guest">초야</span>님의 댓글

초야 작성일

아껴놓은 5코스 맑은 하늘과 바다 다시 보니 새롭게 느껴집니다.
일종고지 그런곳이 있는갑다 했는데 엄청 많은 사연이 있다는 것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5코스는 이전 코스에서 힘을 많이 쏟아 거의 안 다니는 코스인거 같은데 보이는 그림은 5코스가 최고인 듯 합니다.
해넘이와 해맞이 할때 섬들이 풍경을 이어주니 더욱 풍성한 그림이 완성 되는거 같아서요.
더불어 망산의 너덜겅이 바다까지 뻗치고 있는데 가느다란 길이 구도자의 길처럼 독밭을 가르니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 입니다.
자꾸 멋진 모습 보여 주신게 금방 이라도 가고싶은 마음 입니다.
잔잔히 펼쳐진 안도와 주변 섬 섬들이 엄청 평화롭고 자연스레 보이니 내일 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쯤 아마도 마삭줄 덩쿨 더미에 윤기 흐르는 새싹이 트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덕분에 새봄 5코스 감상 야무지게 해 봅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감사합니다~^^
비렁길 5코스를 다녀왔지만 아는 게 없어
풀어내기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몇 날 며칠 뒤졌는데도 너무 진전이 없어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등장밑이 너무 어두웠습니다.
일종고지 바닷가 바위 하나하나에
어떤 이야기가 스며있는지
만약에 보신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늘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세요~^^

<span class="guest">요산요수</span>님의 댓글

요산요수 작성일

5코스 길의 바다풍경과 이야기를 야무지게 다뤄 주셨군요.
사진은 물론 글도 너무 맑고 좋습니다. 고향집 가까운 곳이지만 다시한번 가보고 싶어지는 충동이 듭니다.
일쫑고지 뒷편사진에 바닷물이 간조가 시작되면서 막대처럼 드러나는 실루엣이 바로 밭넙데기로 저곳에 가면 뭐가 되었든 바구니 한가득 선물을 보시하는 부처님 역할을 했습니다. 내게 베풀었던건 노래미와 볼락 굴맹이였는데 무거워서 낑낑거리며 올때가 많았습니다.
일쫑고지 산주이자 정치망 하셨던 박 어르신(박사님)께서 과거 풍어에 힘입어 최초 여남중학교를 설립하여 섬 아이들의 문맹을 깨우쳐 주시는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금오인 다수가 중학교를 다니며 그분의 덕을 크게 입은 바를 일쫑고지 사료에 반드시 명시해 둘 필요가 있다 여깁니다.
학교 교훈도 그 어르신의 뜻을 받들어 '주는사람이 되자' 로 새긴 큰글씨 명판이 건물 정면에 부착돼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글로 바뀐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통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 책임은 후대인 모두에게 있다 하겠지요.. 내 어릴적 발자취와 추억들이 그대로 배어있는 고향의 모습이 올려주신 글과 사진속에서 활짝 피어나는것 같습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뭐라 말할 수 없는 이 감정은
비단 저만 느낀 건 아니겠지요.
이렇게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줄
정말 미처 몰랐습니다.

자료로 쓰려고 부탁드렸던 지명이
너무 뭉클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요산요수님을 다시 뵐 수 있어
너무 감동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span class="guest">요산요수</span>님의 댓글의 댓글

요산요수 작성일

일쫑고지 역사 또 있어요. 지금 일나가는 중이라 저녁무렵 돌아와 2탄 올릴께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감사합니다
너무 기대가 되어요
요산요수님은 살아있는 전설이세요~
오늘도 화이팅 하세요

<span class="guest">요산요수</span>님의 댓글

요산요수 작성일

5코스를 지나다 갈래길로 내려서 일종고지로 진입하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어났다 하는데요.
그 안쪽으로 50미터쯤 들어가다 보면 오래된 집 한 채를 만나게 되는데 궁금해 하는 방문객들이 많다 해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70년대초 새벽부터 동각 마이크에서 새마을노래가 흘러나오고 깨자마자 후딱 아침 먹으면 마을 부역 아니면 밭 일로 정신없을때.
마을에서 소득증대 사업을 장려했는데 토끼를 들여와 키우는집이 많았어요. 고기맛도 괞찮은데다 닭보다 더 빨리크고 번식도 잘된다해서..
그때 일쫑고지 산주 가족중 한분이 일종고지 진입로 병목지대에 철망을 둘러치고 그 안에 집을 짓더니 토끼를 대량 들여와 방목해 사육하기 시작했죠
토끼 이빨이 날카로워 거기 흔한 짜밤 도토리도 잘 까먹거든요. 나무밑에 토끼 잘먹는 덩굴식물도 많았고...
1.2년은 그런대로 잘 적응해 사나 싶더니 갑자기 숫자가 줄고 6.7년쯤 지나자 아예 보기 드물어졌어요. 이것들이 다 바닷물에 빠져 죽은게 아닐까 싶어 원인을 찾던중 이유를 알아낸거여요.
토끼 감소에 맞춰 부쩍 늘어난 대형 구렁이들... 결국 구렁이를 무서워하는 사육자분은 사업을 접고 빠져나왔는데 그 소식을 듣고 뱀 사냥꾼들이 들어가 톡톡히 재미를 봤다고 하네요. 그때 그 구렁이 관련 무용담을 늘어놓는 분들이 아직도 계시니... 그 뒤로 가끔 일쫑고지로 낚시가면 잔여 구렁이들이 볕 쬐느라 길을 막고 늘어뜨려 있는걸 자주 보곤 했는데 커다란 덩치를 믿고 도망도 안가더군요. 몇년전 낚시가다 소나무를 감고 있는 놈을 사진 찍어둔것도 있네요. 산주님이 버려둔 빈집은 마을에서 휴양지처럼 사용했어요. 걸핏하면 몇명씩 몰려가서 라면도 끓여먹고 음악 틀어놓고 신나게 춤추고.. 나도 중2.3때 남여 동창들 몰려가 디스코춤사위를 몇번 벌인적 있고 내 군대갈때도 거기가서 고향친구들이 송별 파티를 열어줬는데 그렇게 이용자가 비단 나뿐이겠어요? 그러던 명소가 십수년 전부터 마을에 젊은사람들이 줄면서 방치돼 있는데 그안에 보면 낡은이불이며 세간살이 일부 먼지를 둘러쓴채 남아 있답니다. 하여튼 사연많은 일쫑고지 별장 집이었네요. 지금은 그곳에 멧돼지가 들어가 새끼를 치며 잔여 구렁이들 다 싹슬이하고 짜밤까지 다 까먹는다는데 무서운곳이 됐어요. 무턱대고 들어가는 낚시인과 여행자들은 이런부분도 잘 살펴야 합니다. 이상 ^^
무슨 큰 내용은 아니고 기대감이 크면 실망도 크단 옛말 튼린게 아니죠.ㅎㅎ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심포 청소년들에게는
정말 너무 좋은 아지트였겠네요
멧돼지가 그래도 좋은 일을 하긴 했는데
이러다 사람들이 멧돼지에 밀려나지 않을까
무척 걱정이 되어요.
일종고지 무턱대고 내려갈 일이 아니네요.
일종고지는 외관만큼이나 너무 많은 사연이 있었네요
귀한 사연 감사합니다. 비렁길 5코스가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에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span class="guest">셕</span>님의 댓글

작성일

고향바다가 사진으로 보니 큰 호수같네.  기회되면 5코스한번 걸어봐야겠네 

<span class="guest">보리피리</span>님의 댓글

보리피리 작성일

비렁길 5코스에 이렇게 많은 역사가 있는줄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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