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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비렁길3/매봉의 위용(10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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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벚나무 조회 882회 작성일 24-05-0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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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 전망대를 찾으셨나요? 

♤낚시하신 분들과 스케일을 한번 가늠해 보세요.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네 ~ 찾았어요~!

너무 아찔해요

매봉 전망대에서 보면 

시스택이(섬과 떨어진 바위)가 

있었던걸로 아는데

그 사진도 있음 더 좋겠어요

해식동의 이름도 붙여주고 싶고

저 멋진 해식애에게 있었을 슬픈 사연도

풀어주고 싶습니다.


산벚나무님 5월도 건강하세요~^^


<span class="guest">요요산수</span>님의 댓글

요요산수 작성일

전에 심포 이름난 꾼들이 매봉에 노젖고 가서

볼락을 가마니 넘치게 낚아오곤 했다던데

지금은 전문 꾼들이 하도 설쳐대다 보니

돌아오지 않는 과거사...

오래간만 매봉 베랑을 가까이 보니 좋네요.

<span class="guest">k800043</span>님의 댓글

k800043 작성일

아, 옥애(獄涯)

 

매봉산 정상에서 뒤편 바다까지는 194m 높이로 거대한 한 개의 암릉이다

그 중간에 다랭이논 같은 좁다란 草地가 있고 해면 쪽은 직벽으로 닭발 모양을

한 세개의 널방()이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곳이 옥애獄涯

옥애는 이름처럼 수직 절벽()으로 단애속 단애고 섬속 감옥이다

바람도 구름도 들면 나가지 못해 목놓아 우는 곳이다

 

옥애는 방목하는 흑염소외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곳이다

웃몰 사람들도 이곳을 가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 분들이 태반이다

매봉산정에서 직하로 떨어지는 돌은 소리가 없어 매우 위험하다

그럼에도 손바닥만 하지만 무주공산이라 땔나무나 소꼴을 자유롭게 밸 수 있고

특히 잎이 큰 돌넝쿨이 많아 겨울철에도 염소먹이를 뜯으러 잦은 출입을 한다

 

옥애는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두 군데다

문앞옥이라 불리는 앞문과 안옥으로 불리는 뒷문이 있다

앞문은 비락바구쪽에서 안옥은 통개 참나무밭 위에서 들고난다

앞문은 협곡위에 걸쳐있는 거북바위 등을 타서 들어가고 뒷문은 절벽의 치렁한

돌넝쿨 줄기를 잡고 오르내려야 해서 안옥은 지게는 어렵고 걸망만 가능하다

두 문간의 거리는 약 오백미터내외로 옥애의 전체 연장이다

 

옥애는 세개의 널방()이 있다

첫물자리, 민정바구, 둥글바구다

문앞옥 아래가 첫물자리로 아주 넓은 널방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민정바구는 본부당

같은 널방이 얕게 잠겨있다 바위표면이 차돌처럼 맨들거려 민정바구다

민정바구 오른쪽에는 둥글바구가 안옥 직하에 자리한다

 

첫물자리에서부터 둥글바구까지는 암벽타기를 해서 간다

매봉산 자락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로 위험천만하다

특히 민정바구에서 둥글바구로 가는 벼랑은 허리도 펼수없는 낮고 좁은 협곡을 곡예

하듯 건넌다 장대로 균형을 잡고 외줄을 타는 것과 흡사하다

옥애는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예외다

흑염소들조차도 네발을 부끄러워했고 앞무릎을 꿇어 나를 경배했다

옥애를 자유롭게 활보하던 그 시절 나는 노름마치였다

 

獄涯는 무섭고 두려운 곳이다 반면 믿음직하고 든든한 곳이다

속 깊은 매봉의 장형長兄이다

없이 산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임을 깨우쳐 주고 도전과 응전의 태세를

가르쳐 준 곳이기도 하다

성장기에 친구를 잃는 아픔이 기억한켠에 남아있는 애증의 知己

문앞옥 암벽의 숫처녀, 숫총각 음각만 무상한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



<추기>

사진1 : 덕석바구 굴입구

사진2 : 둥글바구 좌면

사진3 : 민정바구 좌면

사진4 : 민정바구 중면

사진5 : 민정바구 우면

사진6 : 첫물자리 정면

사진7 : 첫물자리 정면

사진8 : 백정나무잡고 다니는 곳 좌면

사진9 : 첫물자리 우면

사진10 : 백정나무잡고 다니는 곳 정면


만조때 찍으면 거기가 거기같아서 식별도 어렵고 차별도 느끼지 못하지요

수고에 대한 보시가 될런지요

<span class="guest">남사</span>님의 댓글의 댓글

남사 작성일

역시 공명 님의 글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저런 절벽 사이를 걸어 삶을 개척했다하니 존경심이 절로 듭니다. 

없었던 시절에 모두들 힘들 삶을 겪었겠지만 특히 공명 님의 어린 시절은 삶과 죽음의

경계 마저도 허물고 사신 거 같아 경외감이 더욱 큰 거 같습니다.

그러한 삶이 있어 훌륭한 미래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공명님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댓글 올릴 거 사라져서

아쉽긴 하지만

공명님 글 다시 읽어도 감동입니다


<span class="guest">요요산수</span>님의 댓글

요요산수 작성일

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멋진 글 잘 보았습니다.

물 흐르듯 막힘없는 유장한 필력에 한번 감탄하고

'흑염소들조차도 네발을 부끄러워했고 앞무릅을 꿇어 나를 경배했다' 이대목에서

누구든 흉내낼수 없는 고퀄리티한 문장속 함축된 의미, 재치와 유머에 또한번 감탄하고

까마득히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 세세히 기억하시는 전자두뇌에 또 감탄하고

님께서 실로 옥애 활보 노름마치를 넘어 박식에 문장력까지 울림이 대단한 노름마치로 손색이 없습니다.

지난번 고향홈에서 공명님을 다시 뵙는듯 여운이남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금오사람</span>님의 댓글

금오사람 작성일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써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그때는 정말 그렇게들 살았습니다.

산에 나무가 없어 멀고먼 어드미까지 가서 땔나무를 해서 져날라야 했고, 자기소유 산판이 없으면

민둥산에 마른 억새 베어나르는 일도 산주인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어쩌다 구부러진 소사나무 하나 베다

산주한테 발각되면 그자리서 지게를 두두려 박살을 내기 예사였지요. 그래서 험난한 비렁을 타고 다니며 땔나무를

해야만 했습니다. 정말 없이 산다는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다들 힘든 시절을 잘 견뎌왔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건안하십시오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그래서 그렇게 날씬하셨었군요.

날렵하실 수 밖에 없는 체형이셨어요 

전 부삭바구 내려가는데도 다섯발로 내려 갔었구만요.

다섯발이 어딧냐고요?

두 다리 두 손 그리고 엉덩방아요 ^^

메봉산은 늘 건너 끝에서 바라보는 산이었지 내 발을 딛는 것은 아니었었는데

비렁길 생겨서 세번 가 봤습니다.

그래서 이름들이 생소합니다.

어제 OBS방송에 아는 분들 성함과 얼굴들이 나왔어요 얼마나 반가운지.

옛날 창영호에서 내리면 어두운데

무섭다고 박 이장님께서 오토바이로 태워주시곤 하셨었는데요 

늙지도 않으시고 40여년 전 거의 그 모습으로 방송을 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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