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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열도 마을소개

횡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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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지기 조회 2,859회 작성일 09-03-2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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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위치 

 본 마을은 면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위치하고,대횡간도와 소횡간도 2개의 섬으로 되어있다. 바다 건너 북쪽으로 돌산 금성, 서쪽으로 화태도, 남서쪽으로 나발도와 소두라도가 있다. 대횡간도는 조그마한 산정상에서 서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마을이 형성 되어 있고, 동남쪽으로는 지세가 험하다. 그리고 소횡간도는 남쪽 끝이 높고 북쪽은 낮은 지세로 중간쯤에 해안을 따라 마을이 형성 되어 있다


마을 형성
 

서기 1626년 경 천안전씨 윤동이 돌산 죽포에서 처음으로 이주해와 정착을 시작하였으며, 이어서 김해김씨 억이 돌산 신기에서 이주해 왔다. 서기 1630년 경 구체에서 살던 진주강씨 만태가 이주해 오고, 이어서 달성서씨 등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지명 유래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위치하고 있는 돌산의 신복리에 '복병끝" 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 지역을 빗긴다 하여 "빗간이"라고 불러오다  빗길횡간(橫干)이라 하였다 하기도 한다.


유물 유적
   

놀이청 해석문  마을 동북쪽 해안 암벽에 <節度使 柳星彩 ~~>이라는 글귀가 길게 새겨져 있다. 방답첨사의 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돌산에 방답진이 설치된 이후의 술인년에 이 지방 관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기념하기 휘해 새긴 것으로 보인다. 계단식으로 된 연면적 50평 정도의 널찍한 암반을 이용하여 건너편 돌산 금성에 있는 해안굴을 과녁 삼아 활을 쏘는 지방관원들의 무예 연마장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아울러 고관들의 놀이터 역할도 검토하였다고 하여 지방민들은 이를 "놀이청 "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당(祭堂)  마을 동쪽 산중턱의 당산에 세워져 있다. 제당에는 백지(白紙)에 용마(龍馬)가 그려져 있고 흙으로 만든 말 2마리가 있으며 그 곁에 알처럼 생긴 둥근 돌 하나가 놓여져 있다.
관왕묘(關王廟)  마을 뒤쪽에 낮은 산중턱에 세워져 있는데, 현재의 관왕묘 건물은 해방후에 중수한 것이다. 서기 1888년경 김덕천(金德天)씨 부친께서 서울에 갔다가 친구의 소개로 초상화 1점을 얻어와 사당을 세웠는데 일제시대때 주재소에서 칼, 초상화, 책 등을 빼앗아 가 버려 일시 폐쇄되었다가 서기 1914년 경 김덕천씨와 추희조(秋熙祚)씨 가 초상화를 다시 제작하여 관왕묘제를 모시게 되었다 한다.
보호수  수령(樹令) 500년 이상된 괴목나무 1그루, 후박나무 27그루


마을 구성 및 특징물 
 

대횡간도(大橫干島)[큰비깐섬] 〈마을〉 화태리 동쪽으로 약 2km 지점에 있는 마올. 두 개의 섬중 크다하여 명명.
소횡간도(小橫干島)[작은비깐섬] 〈마을〉 대횡간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음. 대횡간도에 비해 작은 섬이라 하여 부름.
보호수 〈나무〉 횡간리 동쪽에 있는 느티나무, 북쪽 가지가 무성하면 윗쪽시절이 좋고 남쪽가지가 무성하면 아래쪽 시절이 좋다고 함. 수령은 약 500여년, 수고 35m, 흉고 4.5m.
제당 〈당〉 횡간마을 동쪽 산중틱 당산(堂山)에 있음. 섣달 25일경 생기복덕이 맞는 부부(夫婦)를 선출하여 정월 초하루에 풍어와 마을의 무사를 기원하는 제를 지 냄.
공동묘지 〈묘〉 횡간(橫干)마을 동쪽(횡간리 산 2번지)에 있는 공동묘지. 현재는 개간되었음.
놀이청 해석문 〈비〉 횡간마을 북동쪽 해안 암벽에 있음. 돌산에 방 답진이 설치된 이후 무인년에 지방관리들이 한자리에 모인것올 기념(記念)하기 위해 새긴 것으로 추측되는 돌바위.
화태국민학교 여동분교 〈학교〉 횡간마을 동쪽에 있는 학교. 1951년 화태분교 설립(說立). 1976년 12월 1일 화태국민학교 여동분교로 개칭.


마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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